자폐를 소재로 다룬 영화 중에 더스틴 호프먼과 톰 크루즈가 주연한 ‘레인맨’은 단연 수작이다. 자기 머리를 치며 괴성을 지르는 호프먼의 자폐 연기는 자폐인들이 겪는 고통을 실감 나게 보여줬다. 이 작품에 나오는 자폐의 또 다른 특징이 초능력에 가까운 암기력을 발휘하는 ‘서번트 증후군’이다. 어린아이 지능인 자폐인이 게임에선 카드 배열 순서를 완벽하게 암기해 돈을 딴다. 영화 밖에서도 실제 있는 일이다. 3살 때 자폐 판정을 받은 영국 화가 스티븐 윌트셔는 어느 도시를 가든 비행기에서 슬쩍 바라본 풍경을 세밀화로 복원한다. 별명이 ‘인간 카메라’다.

▶서번트 증후군은 영화나 드라마가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즐겨 선택하는 소재다.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주인공은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자폐 변호사다. 법전을 달달 외우고 조서 몇 쪽 몇째 줄에 무슨 문장이 있는지 훤히 꿴다.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의학 드라마 ‘굿닥터’에 나오는 자폐 의사도 평소 눈치 없이 굴다가 환자만 보면 엄청난 의학 지식으로 질병을 치료한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드라마식 판타지일 뿐이다. 자폐 장애인 중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는 사례는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부분 저(低)지능이다. 특수한 능력을 보인다 해도 암기나 계산 같은 단순 기능에 국한된다. 종합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의사·법조인·학자가 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발달장애 3급인 프로골퍼 이승민이 그제 미국에서 열린 장애인 US오픈에서 우승했다. 장애를 딛고 이룬 대단한 성취다. 이승민은 어릴 적부터 골프공에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골프도 타인과 겨루는 경기이기는 하지만 본질은 자신과 싸우는 종목이다. 정지된 공에 강한 집중을 해야 한다. 스윙 동작은 한결같다. 골프는 자폐의 행동 특성에 맞는 종목일 수 있다. 전문의에게 물어보니 자폐인들은 타인과 직접 부딪치는 종목보다는 골프나 마라톤처럼 자기 경기에 집중하고 인내심을 발휘하는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 영화 ‘말아톤’이나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자폐인도 삶을 향한 열정을 갖고 있으며 성취의 기쁨을 갈망한다.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계속 도전한다”는 이승민의 우승 소감은 타인에 대한 배려까지 더해 더욱 값지다. 자폐에 대한 사회의 통념을 깨는 말이기도 하다. 이승민의 성과는 지적 분야까지 이르지 못하다고 해서 퇴색하지 않는다. 몸이 흘린 정직한 땀의 가치를 입증한 그에게 축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