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백신 지원 사업을 벌였던 재미 한국인 과학자가 얼마 전 자신의 실패담을 들려줬다. “백신을 주겠다니 북한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 백신을 실어 나를 트럭이 없다고 했다. 트럭을 사주니까 이번엔 백신을 보관할 냉장고가 없다며 사달라고 했다. 트럭에 냉장고를 싣고 북한의 백신 접종 현장에 갔더니 이번엔 냉장고를 돌릴 전기가 없었다. 어쩔 도리가 없어 포기하고 돌아왔다.”
▶해방 직후 한반도 전기의 92%를 북한 지역의 발전소가 생산했다. 압록강의 수풍 수력발전소는 당시 아시아 최대, 세계 3위 규모였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앞두고 북한이 전기 공급을 끊자 남한 전체가 암흑 천지로 변했다. 이랬던 북한이 한국에 전기를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50년도 걸리지 않았다. 세계 산업사의 미스터리로 꼽힌다.
▶비료도 그렇다. 해방 직후 흥남의 질소비료 공장은 아시아 최대, 세계 5위 규모였다. 한반도에 필요한 비료 전량을 공급하고도 남아돌아 매년 18만t가량을 수출했다. 이랬던 북한이 역시 50년 만에 한국으로부터 비료를 지원받아야 했다. 공장을 돌릴 인력도 있었다. 한국과 달리 북한은 일본인 기술 인력을 장기간 체류케 해 필요한 기술을 뽑아냈다. 남한의 사회 혼란과 좌파 사상 유행 때문에 한국 고급 인력도 대거 북한에 유입됐다. 일제 말기 경성제대 이공학부를 졸업한 인재 중 40%가 월북했다.
▶1960년대까지 한반도에서 경제 기적이 일어난다면 한강이 아니라 대동강 중심일 것이라고 했다. 광물 자원이 압도적이었고 만주 경영과 전쟁 물자 공급을 위해 세운 일본의 중화학 설비가 북한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많던 자원과 설비가 어디로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 월북 인재들도 북한 정권의 눈밖에 나 상당수 흔적 없이 사라졌다. 경제정책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한 사람이 결정하는 신정 체제에선 최대 설비도, 최고 인력도, 퍼주기 지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북한에 억류돼 고문받고 숨진 미국 대학생을 기리는 오토 웜비어 재단의 첫 장학생 이서현씨가 인터뷰에서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처럼 북한이 대동강의 기적을 이뤄낼 발판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며 “김씨 정권에 희생되는 사람이 없도록 북한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세우는 것이 꿈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했다. 북한을 아는 탈북민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은 한국이 자유민주 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동강의 기적 역시 자유민주주의 아니면 일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