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 평창동의 한 갤러리 앞에 캠핑용 텐트 수십개가 늘어섰다. 안에선 20~30대 ‘MZ 컬렉터’들이 다음 날 시작되는 전시에서 작품을 사려고 밤샘 중이었다. 이 갤러리는 관행대로 단골에게 예약 판매를 하려다가 MZ 컬렉터들로부터 “현장 판매하라”는 항의를 받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선착순 1인당 1점’ 방식. 갤러리 앞 텐트 밤샘이 생겨난 이유다. 줄을 대신 서는 ‘웨이팅 알바’도 등장했다. 신세대 컬렉터들이 만든 미술품 구매 신풍속이다.
▶몇 해 전부터 젊은 컬렉터들이 미술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2일 코엑스에서 개최된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와 토종 아트페어 키아프(Kiaf)의 공동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재력 있는 VIP만 초청한 첫날엔 피카소, 콘도 등을 선보인 3층 프리즈에만 사람이 들고 1층 키아프는 한산했다. 키아프가 프리즈의 ‘들러리 페어’가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일반 관람이 시작된 둘째 날부터 20~30대 청년들이 대거 전시장에 몰렸고 주말 내내 1층도 북새통을 이뤘다.
▶학계에선 1인당 소득 1만달러를 넘어선 1995년부터 한국이 의식주 중심 소비에서 여행·레저 위주로 바뀌었다고 본다. 25~39세인 MZ는 그때 부모 손잡고 모마(MoMA)와 구겐하임, 오르세를 찾아가 일찌감치 미술을 즐긴 ‘미술 친화’ 세대다. 이들은 이번 코엑스 행사도 즐겼다. ‘에곤 실레를 여기서 보다니, 감격!’ ‘다리는 아파도 눈은 즐겁다. 헥헥’ 같은 경쾌한 감상평을 작품 사진과 함께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작품 앞에서 찍은 셀카도 곁들였다. “3층에서 눈호강하고 작품은 1층에서 산다”며 동선을 올린 이들도 있다.
▶주머니 가벼운 MZ 컬렉터들은 한 작품을 여럿이 소유하는 공동 구매에도 적극적이다. 아트앤가이드, 테사, 소투, 아트투게더 등 공동구매 플랫폼 중심으로 500억원 규모 시장이 형성돼 있다. 일부는 작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린다. 인터넷에는 컬렉터가 되려는 젊은이를 대상으로 강좌가 개설되고, ‘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 같은 젊은 컬렉터 겨냥 책들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젊은 컬렉터들이 작품 감상은 뒷전이고 돈만 밝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부모 세대 컬렉터도 재테크나 상속 수단으로 입문했다가 미술을 공부하며 안목을 키웠다. 그들보다 어릴 때 미술과 놀고 즐긴 게 MZ 컬렉터들이다. 그들이 한국 미술의 저변을 확대하고 K아트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