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야리가타케(槍ヶ岳)라는 산이 있다. 도쿄에서 차로 5시간 가고 등산로에 들어서 9시간 넘게 올라가야 해발 3180m 정상에 오른다. 첩첩산중 한가운데 있는 준봉(峻峯)이다. 2008년 일본에서 근무할 때 이 산 정상 부근 산장에 머문 적이 있다. 익숙한 냄새에 돌아보니 한국인 중년 등산객 수십 명이 김치통을 열고 밥을 먹고 있었다. 한국 100대 명산 등반을 끝내고 일본 100대 명산 등반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놀랐는데 곧 평범한 얘기가 됐다.
▶일본에 있으면서 틈이 나면 등산을 하고 여행을 다녔다. “후지산을 4번 올라가고 47개 지자체를 모두 여행했다”고 하면 일본 사람도 대개 인정한다. 그런데 3~4년 뒤부터 이런 자랑도 별 게 아니게 됐다. 인스타그램 유행과 더불어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구석구석을 후벼 파듯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웬만한 일본인은 평생 발들일 일 없는 서태평양 절해고도까지 간다는 말을 듣고 “역시 젊음은 다르다”고 느꼈다.
▶일본이 뭐가 좋으냐고 물으면 “볼 것, 살 것, 먹을 것이 많고, 게다가 싸다”고 한다. 한 달 전 3년 만에 도쿄 편의점에 갔더니 서울 편의점에서 2100원인 코카콜라가 160엔(약 1600원)이었다. 생활 물가를 비교할 때 자주 쓰이는 빅맥 햄버거는 서울 4900원, 도쿄 390엔. 도심 한식당의 점심 냉면값은 1000엔을 받았다. 일본 샐러리맨에게 물어보니 “심리적으로 점심값 1000엔 벽이 아직 높다”고 했다. 교통비는 여전히 비싸지만 식음료 값은 서울의 70~80% 정도인 듯했다.
▶2018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53만명이었다. 국민 7명 중 1명이 그해 일본을 다녀왔다. 5년 전보다 3배 늘었다. 일본 여행을 늘리는 정책이 나온 것도 아니다. 외교 관계도 좋지 않았지만 “싸고 좋다”며 많은 젊은이들이 일본으로 떠났다. 2019년 한국의 ‘NO 재팬’ 운동, 이듬해 코로나 대유행과 장기간의 국경 봉쇄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연 1000만명을 내다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일본이 3년 만에 무비자 입국과 자유 여행 재개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일본 여행 예약이 822% 늘었다고 한다. 꽉 눌린 것이 터질 조짐이다. 관광공사에 따르면 요즘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해외 여행지도 일본이다. 엔화 하락으로 더 싸졌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한다. 한때 대일 여행수지 적자가 37억달러에 달했다. 무역수지까지 적자인 마당에 과소비가 걱정되기는 한다. 그래도 여행은 좋은 것이다. 많이 보면 깊이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