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1812년 러시아 원정과 히틀러의 1941년 소련 침공은 모두 6월에 시작됐고 속전속결을 노렸다. 나폴레옹은 50일 치 군량을 준비하라 했고, 히틀러는 4개월 안에 전쟁을 끝내라 했다. 두 사람은 러시아의 겨울을 두려워했다. 러시아가 버티자 나폴레옹은 12월 영하 39도 강추위 속에서 퇴각했다. 먹을 게 떨어진 나폴레옹군은 야포를 끄는 말까지 잡아먹다가 쫓아온 러시아군에 궤멸당했다. 나폴레옹은 “겨울이 우리를 파멸시켰다”고 했다.

▶러시아가 ‘대(大)조국전쟁’이라 부르는 2차 세계대전 때도 추위는 그들의 우군이었다. 우크라이나 평야가 10월에 보름간 내린 비로 진창이 되자 나치 전차가 진군을 멈췄다. 멈춰 선 전차 위로 때 이른 맹추위가 덮쳤다. 전차 부동액이 얼고, 여름 군복 차림이었던 독일군은 얼어 죽었다. 870여 일간 이어진 독일군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를 끝낸 것도 영하 40도 강추위였다. 이 도시와 붙어 있는 호수가 얼어붙자 소련 군용 트럭이 그 위로 보급품을 실어 날랐고 독일군은 퇴각했다.

▶6·25 때 장진호 전투는 추위와 성공적으로 싸운 전투였다. 미 해병 1사단이 8배나 많은 12만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퇴각할 수 있었던 비결로 든든한 겨울 병참이 꼽힌다. 미 해병은 장진호 인근에 수송기 이·착륙장을 짓고 전투 내내 솜옷과 탄약을 공급했다. 보급을 받지 못한 중공군은 추위에 정신착란자가 속출했다. 영하 32도까지 떨어지는 추위와 싸운 경험은 이후 미군의 극한지 전투 교리 완성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

▶겨울 전쟁은 역사의 물길도 바꿨다.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린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은 1차 대전에 지친 러시아 군대가 한겨울에 반기를 들면서 시작됐다. 러시아는 모든 항구가 겨울에 얼어붙자 부동항을 확보하려고 했고 이를 막으려는 영국과 싸운 게 크림전쟁이다.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 무대는 2차 대전 독·소 전쟁 당시 피바다가 됐던 우크라이나 흑토 지대다. 영화를 찍은 곳이 최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탈환한 헤르손이다. 이번에는 러시아가 침략자 되어 우크라이나 겨울을 전쟁에 이용하려 한다. 우크라이나 전역의 전력 시설에 미사일을 쏴 난방과 수도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을 추위에 몰아넣으면 전쟁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겨울이 늘 러시아 편이었던 것은 아니다. 핀란드를 침략해 벌인 ‘겨울 전쟁’에선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러시아의 겨울 전쟁 전략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