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월 얄타 회담을 마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의 미 군함 퀸시로 향했다. 함상엔 13년 전 무력으로 아라비아를 통일한 이븐사우드 사우디 초대 국왕이 있었다. 1938년 미국 자본 아람코가 사우디 다란에서 유전을 발견한 후 양측의 첫 석유 회담이었다. 미국은 사우디의 석유가 절실했고, 사우디는 왕실과 국가의 안보가 필요했다. 양국 간 80년 동맹의 시작이었다.
▶1951년 상호방위협정을 맺은 사우디는 미국의 보호 덕분에 아랍 군사 정변과 급진 이슬람 세력의 위협에도 평온했다. 대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중동 침투를 막아달라”고 했다. 1974년 석유 파동이 터지자 양국은 ‘페트로 달러’ 협약을 맺는다. 미국이 사우디의 안전을 담보하는 대신 원유 결제는 오직 달러로만 한다는 약속이었다. 국제 결제 수단으로써 달러의 유일 패권적 지위가 공고해졌다.
▶순탄하던 관계는 미국에서 셰일 가스가 나오면서 금 가기 시작했다. 사우디 원유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사우디에선 2017년 빈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았다. 그는 이전 통치자와 달랐다. 미국 눈치를 보며 고분고분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을 비판한 언론인 카슈끄지를 끔찍하게 살해해 미국을 경악하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못 본 척 넘어가자 빈살만은 미국 무기 1100억달러 구매로 화답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을 “왕따시키겠다”고 했다. 격분한 빈살만은 바이든의 ‘석유 증산’ 요청을 면전에서 거부했다.
▶이슬람 수니파로 왕정 국가인 사우디는 시아파 신정(神政) 국가인 이란과 불구대천의 앙숙이다. 그런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과 핵 협상을 하고, 바이든이 이를 재개했다. 사우디는 배신감과 위기감을 느꼈다. 사우디는 작년 러시아와 군사협정을 맺은 데 이어 7일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맞아 상식을 넘는 환대를 했다. 수도 리야드에 아랍 21국 정상들을 불러모아 시 주석과 연쇄 회담을 갖게 했다. 수백억달러 계약도 체결했다. 미국 보라는 것이다. 시 주석은 “위안화로 원유 결제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핵심 이익인 ‘페트로 달러’ 협약까지 깨질 수 있다는 경고다. 미국은 이것만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미국과 사우디 동맹이 쉽게 무너질 것이라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양측은 경제·안보적으로 깊이 엮여 있다. 앞으로 수십년을 통치할 빈살만이 임기 중반을 넘긴 바이든 이후를 보며 위력 시위를 하고 있지만 사우디는 약점도 많은 나라다. 여기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