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 시민분향소 인근에 걸린 현수막들./연합뉴스

요즘 서울 이태원 광장 풍경은 보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희생자 영정을 놓은 분향소 주위를 현수막들이 감싸고 있다. “국민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남의 죽음 위에 숟가락을 올려 정치 선동질 하지 말라”는 내용들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사고 희생자 수를 나열한 현수막도 걸려 있다. “이재명 구속 수사하라”처럼 사고와 상관없는 정치 구호도 여럿이다. 여기서 “파이팅”을 외치면서 갈등을 조장한 정치인도 있었다.

▶참사 현장은 500m 떨어진 곳에 따로 있다. 추모가 어려울 만큼 참배객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유가족과 시민단체 일부가 이태원 서쪽 입구 광장에 분향소를 세웠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이를 비난하는 현수막이 대거 내걸린 것이다. 녹사평역 쪽에서 이태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탄식한다. 사고 현장이 가장 척박하고 살벌한 정치 갈등의 현장이 됐다.

/일러스트=박상훈

▶누구보다 이태원 상인들이 고통스럽다. 분향소 옆 한 건물은 1층 매장 전체가 문을 닫았다. 상점이든 주점이든 이런 곳에서 어떻게 영업이 가능하겠나. 참사가 일어난 곳도 아닌데 날벼락을 맞았다. 사고 후 두 달이 지났고, 해까지 넘겼는데 이태원 상인들은 반쪽 난 매출 그대로라고 한다. 주민들은 매일 갈등의 장면을 보면서 고통을 받는다. 갈등 주도 세력은 세월호 때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주민과 상인에게 이곳은 삶의 공간이다.

▶참사는 핼러윈 날 18㎡의 좁은 골목에서 일어났다. 이태원 1·2동은 1만5000여 명이 거주하는 1.43㎢ 넓이의 공간이다. 참사 현장은 이태원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사건을 ‘이태원 참사’라고 한다. 국회는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라고 한다. ‘이태원 참사’는 일방적인 언어다. 주민과 상인에겐 삶의 공간에 부정적 족쇄를 영구히 채우는 폭력적인 말이기도 하다.

▶이번 사고는 핼러윈 축제 때 인원 과밀과 안전 관리 실패로 발생했다. 이태원은 사고가 일어난 곳의 거리 이름일 뿐 본질이 아니다. 지역을 고려해 영광 원전과 울진 원전 이름을 한빛과 한울 원전으로 바꾼 게 10년 전이다. 지역의 일부에서 무슨 사고가 났다고 그 지역 전체의 이름을 붙여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고는 ‘핼러윈 압사 사고’ 또는 ‘핼러윈 참사’라고 해야 한다. 이태원 주민과 상인들이 하루빨리 일상을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