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등을 금지하는 이른바 ‘김영란법’ 제정의 계기가 됐던 사건 중 하나가 ‘벤츠 여검사’ 사건이다. 여검사가 내연관계인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 대가로 벤츠 승용차 등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 결론은 무죄였다. 1심은 징역형을 선고했는데 2심이 “사랑의 정표”라며 무죄를 선고했고 그대로 확정됐다. 벤츠 받은 게 사건 청탁 이전이었다는 이유였다. “청탁하고 벤츠 주면 유죄, 벤츠 주고 청탁하면 무죄냐”는 말이 나왔다. 8년 전 일이다.

▶2009년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공중 부양’으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국회에서 농성 중이던 당직자 강제해산에 항의해 국회 사무총장실 탁자 위에 올라가 뛰고 국회 직원을 폭행한 사건이다. 그런데 1심은 “흥분 상태여서 고의성이 없었고, 사무총장은 신문을 보고 있어서 공무 집행 중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나마 나중에 유죄로 뒤집혔다.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은 외국에도 있다. 이탈리아 법원에선 술집에서 약물을 먹여 여성을 성폭행한 남성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일이 있었다. “피해 여성의 외모를 볼 때 강간 대상이 되기엔 너무 남성적”이란 이유였다. 여성들은 항의 집회를 열었고, 이탈리아 대법원은 결국 무죄 판결을 취소했다. 불과 4년 전 일이다.

▶판결은 법과 양심에 따라 한다지만 상식에 너무 어긋나지 않아야 권위가 생긴다. 그런데 왜 이처럼 이상한 판결이 나오는 것일까. 판사들이 증거와 법리를 살펴 결론을 내린다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결론부터 내리고 거기에 맞는 증거와 논리를 찾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건 당사자들이 알면 펄쩍 뛸 일이지만 실상이 그렇다. “일단 결론 내면 논리 붙이는 건 일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판사 출신 변호사도 봤다. ‘공중 부양 무죄’ 등도 그런 경우일지 모른다.

▶대장동 사건에서 곽상도 전 의원의 ‘50억원 뇌물’ 혐의에 대한 1심 법원의 무죄 판결이 계속 논란이다. 상식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돈은 대장동 업자 김만배씨 회사에서 일한 곽 전 의원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돈이다. 판사는 곽 전 의원과 아들이 독립 생계라서 무죄라고 했다. 이 논리면 100억, 1000억을 받아도 무죄다. 앞으로 뇌물은 ‘독립 생계’인 자식에게 주면 되겠다는 말도 나온다. 상속세도 안 내고 더 좋다는 것이다. 법리는 상식과 늘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의 양식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어이없게 만드는 법리는 법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