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인 ‘장학퀴즈’가 1973년 2월 18일 처음 전파를 탈 때만 해도 반세기나 장수하리라 예상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제퍼디!’처럼 오래 사랑받는 TV 퀴즈쇼는 대개 연예인이나 성인 대상이었고 오락성을 강조했다. “나라의 미래는 인재 양성에 달렸다”고 믿은 최종현 선경그룹(현 SK) 회장이 전폭 지원을 약속하면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최 회장은 고인이 됐지만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방송이 나가자 학생들이 환호했다. 가난해도 정상에만 오르면 최장 4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서점엔 장학퀴즈 기출 문제집이 등장했고 녹화하는 날이면 학생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오프닝 곡인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빰빰빰빰~ 빰빠빠빠빠~’는 지금도 똑똑한 사람이 방송에 출연할 때 단골 배경음악으로 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선 난제(難題)를 풀어야 살아남는 참가자들의 아침 기상곡으로 활용했다.
▶녹화 현장에선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과 함께 응원전을 펼쳤다. 장원이 나오면 교문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개교 이래 처음 주 단위 장원을 배출한 수도권 어느 고교는 시내에서 고적대 퍼레이드까지 벌였다. “학교 명예가 걸렸다”며 일부에선 테스트를 거쳐 학생을 출연시켰다.
▶최종현 회장은 ‘똑똑하다’는 뜻의 영어 ‘스마트’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룹 산하 선경직물이 1970년대 내놓은 학생복 옷감 브랜드명도 ‘스마트’였다. 가수 조영남이 부른 협찬 광고곡 ‘이겼다 또 이겼다/ 승리의 스마트다~’는 국민 CM송이 됐다. 많은 50~60대가 지금도 이 노래를 기억한다. 스마트 자전거도 부상으로 줬다. 나라의 미래를 똑똑한 학생들이 열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그 안에 녹아 있었다. 1996년부터는 스마트 학생 모델 선발 대회가 열렸다. 송혜교·설현·수지·동방신기·BTS 등 한류 스타들이 거쳐 갔다.
▶장학퀴즈가 이번 주말로 50년을 맞는다. ‘전국노래자랑’보다도 오래된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방송에서 재미는 프로그램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이런 풍토에서 학생 퀴즈가 반세기나 존속했다. 초대 MC로 17년간 장학퀴즈를 진행한 차인태 전 경기대 교수는 “외국에도 학습 효과를 가미한 퀴즈쇼가 있지만 장학퀴즈 같은 사례는 드물다”고 했다. 교육을 통해 가난을 벗고자 했던 시대의 열망이 반영된 현상일 것이다. 물건 만들어 파는 일 못지않게 인재 양성도 기업보국(企業報國)이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한 기업인의 충정이 이런 기막힌 스토리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