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테너로 꼽히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1981년 미국 팝 가수 존 덴버와 함께 ‘퍼햅스 러브’를 발표하자 많은 사람이 “팝송을 테너 목소리로 듣는 것은 처음”이라며 반색했다.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이 즐겨 부르는 명곡 ‘카루소’도 이탈리아 재즈 음악가 루치오 달라가 곡을 만들어 또 다른 3대 테너였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찾아가 “함께 부르자”고 제안해 세상에 나왔다. 성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이후 크게 일었다.

▶세계 음악의 최전선에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지는 추세다. 유럽 축구 UEFA 챔피언스 리그는 헨델의 대관식 찬가 ‘제사장 사독(Zadok The Priest)’을 공식 응원곡으로 편곡해서 쓴다.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2009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맨유와 FC바로셀로나 결승전 때 관중 앞에서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보첼리와 세라 브라이트먼이 함께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도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넘나드는 명곡으로 꼽힌다.

▶한국에선 서울대 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함께 부른 ‘향수’가 성악과 다른 장르를 결합하는 ‘크로스 오버’ 물꼬를 텄다. 조선일보가 10여 년 전 ‘현대시 100년 애송시 100편’을 연재했을 때 ‘향수’가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도 노래로 먼저 애송된 힘이 컸다. 성악가 김동규가 노르웨이 혼성 듀엣 ‘시크릿 가든’의 연주곡을 편곡해 부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도 성악 대중화의 성공 사례다.

▶박인수 교수는 ‘향수’를 불렀다가 ‘성악을 타락시킨 죄’로 국립오페라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도밍고와 파바로티도 처음엔 “대중 가수와 노래하느냐”며 동료에게 손가락질당했다. 17세기 바로크 음악도 비슷한 곤욕을 치렀다. 지금은 특유의 역동성과 화려함으로 클래식 저변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지만, 태동기엔 대중에 영합해 르네상스 음악의 조화를 깬 싸구려 취급을 당했다. 바로크라는 용어 자체가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국민 테너’로 오래 사랑받았던 박인수 교수가 1일 영면에 들었다. 박 교수가 떠난 자리엔 그가 생전에 뿌린 성악 대중화의 씨앗이 싹터 열매를 맺고 있다. 팝페라 붐이 인 것도, ‘찾아가는 음악회’ 등으로 오케스트라가 대중 앞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테너 박인수가 대중 사이에 뛰어들어 용기 있게 앞서간 이후다. 최근에는 성악가 김호중·길병민 등이 트로트와 성악을 접목해 대중 앞에 섰다. 덕분에 우리 음악이 더욱 풍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