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고대 로마 집정관이었던 루키우스 술라는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집안 어른이 뇌물죄로 원로원에서 쫓겨난 뒤 가난 속에 살았다. 온 가족이 불운을 탓했지만 술라만은 돈을 빌려가며 귀족 가문이 받는 값비싼 수업을 들었다. 훗날 전쟁터에서 연전연승하고 권력까지 거머쥐자 로마인들은 ‘행운의 여신이 사랑한 자’라며 ‘펠릭스(Felix·행운) 술라’라는 존칭으로 불렀다. 로마인들은 술라의 행운만 봤지, 그가 불운에서 벗어나기 위해 흘린 땀은 못 봤다.

▶메이저리그 2004 시즌 264안타를 때려냈던 일본의 야구 영웅 스즈키 이치로는 경기 전 아내가 만든 규동만 먹었다. 야구에 집중해야 할 뇌가 맛 따위를 느끼는 데 쓰일까 봐 우려했다고 한다.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팀 우승을 이끈 오타니 쇼헤이도 야구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이치로에겐 없는 게 하나 더 있다. 15세 때 작성했다는 ‘만다라트 자기 계발법’이다.

▶일본의 한 경영연구소가 불교 회화인 ‘만다라’ 이름을 따서 만든 이 표는 가로세로 9개씩, 총 81개 정사각형으로 돼 있다. 중심의 빈칸에 핵심 목표를 적고, 핵심 목표를 둘러싼 8개 사각형에 세부 목표를 써넣은 뒤, 이 8개 세부 목표를 이룰 실행 계획 64개로 나머지 칸을 채우는 방식이다.

▶오타니는 표 중앙 핵심 목표에 ‘8구단 드래프트 1순위’라고 썼다. 세부 목표로 ‘몸 만들기’ ‘제구’ ‘스피드 160㎞/h’ 등 8개를 정했다. 특이하게도 그중 하나가 ‘운(運)’이다. 놀랍게도 오타니가 본 인생의 운은 ‘우연히 찾아드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획득하는’ 운이다. 그는 운을 얻기 위해 ‘인사하기’ ‘플러스 사고’ ‘책 읽기’ ‘심판 분을 대하는 태도’ ‘응원받는 사람 되기’ 등 8개를 적었다. 운동장 쓰레기를 주우며 ‘‘다른 사람이 버린 행운을 줍는 것”이라고도 했다. 15세 소년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놀랍다. 어떤 어른이 조언한 것이라고 해도 이를 지키려 노력한 어린 소년이 참으로 기특하다.

▶오타니는 이번 WBC 대회 결승을 앞두고 “우리가 우승해야 아시아 다른 나라 야구도 자신감을 갖는다”는 말로 완패한 다른 팀을 배려했고, 우승을 갈망한다면서도 미국팀엔 “오늘 하루만 그들을 향한 존경을 버리자”고 했다. 많은 한국인이 오타니에게 아낌없는 축하 박수를 보내는 이유일 것이다. ‘행운은 시력이 좋다’는 말이 있다.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정말 만화 같은 야구를 펼치는 오타니가 앞으로 더욱 대성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