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업무 스타일이 서방에 알려진 것은 2차대전 전후 처리를 위해 크림반도 휴양지 얄타에서 미·영·소의 세 거두가 만났을 때였다. 스탈린은 밤 9시에 회의하고 자정에 저녁을 먹었으며 새벽 5시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식사 자리에 호출당한 부하들은 낮잠을 미리 자 두었다. 스탈린 앞에서 졸았다가 끝이 좋지 않았던 동료를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억지로 술을 먹여 실수를 유도하는 것으로 부하들 약점도 잡았다. 훗날 소련 서기장이 되는 흐루쇼프는 “스탈린과의 저녁 식사가 두려웠다”고 했다.
▶많은 독재자가 밤에 일하고 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잔다. 자기 멋대로 일할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일상이 무너진다. 나폴레옹은 하루 평균 4시간밖에 못 잔 불면증 환자였다. 히틀러는 하루 두 번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간신히 잠들었고, 20대에 쿠데타로 집권한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도 40대 초반부터 과량의 수면제를 복용했다.
▶북한 김씨 왕조 권력자들도 불안을 술에 의지해 달랜다. 김정일은 생전에 지방 간부들에게 새벽 전화를 걸곤 했다. 북한 선전 매체들은 이를 주벽(酒癖)이 아닌 애민 정신으로 호도했다. 전화받은 간부가 “새벽 4시가 넘었습니다”라 하면 김정일이 “내게는 지금이 한창 일할 시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실상은 밤샘 폭음했다는 증언이 여럿이다.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은 수기 ‘대동강 로열패밀리’에서 저녁에 시작된 비밀 연회가 새벽까지 계속됐고 김정일이 취해야 끝났다고 했다.
▶노동신문이 25일 ‘위대한 어버이의 하루’라는 기사에서 김정은이 새벽 5시까지 일한다고 보도했다. 서방 언론 분석은 다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올 초 “김정은이 폭음한 뒤에 운다”며 “외로움, 건강 염려증, 체제 유지에 대한 압박”을 이유로 꼽았다. 우리 국정원도 김정은이 매주 3~4회 밤샘 술 파티를 하고 과음한다고 국회에서 보고한 적이 있다. 술에서 깨려고 가정용 사우나 설비를 유럽에서 수입했다는 증언도 있다.
▶권력에 집착했고 암살 걱정에도 시달렸던 스탈린의 최후는 허무했다. 1953년 2월 28일, 평소처럼 심야 연회를 하고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며 “내가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마라”고 했다. 다음 날 일어나지 않는 독재자의 방문을 측근들은 감히 열지 못했다. 밤 10시 넘어 중요한 소포가 배달되자 그 핑계로 문을 열었지만 이미 스탈린은 뇌졸중으로 회생 불능 상태였다. 독재의 대가가 이처럼 값비싸다는 사실을 김정은은 깨닫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