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중국 당나라 전성기인 현종 때 수도 장안(시안)엔 70여 국 사신이 모여들었다. 금은보화와 특산품 등 조공이 가득 쌓였다. 현종은 사신들을 맞는 화려한 연회를 열고 조공보다 더 많은 하사품을 내렸다. 토번국(티베트) 왕에겐 공주까지 아내로 보냈다. 중국은 ‘주변 오랑캐’를 다루기 위해 다섯 가지 미끼를 썼다고 한다. 음식과 음악, 곳간, 옷감, 술로 상대의 입·귀·배·눈·마음을 홀렸다.

▶중국은 2006년 미 재무장관이 방문하자 자금성의 모든 야간 조명을 켜고 불꽃놀이까지 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때는 자금성 문을 닫고 만한전석(滿漢全席·한족과 만주족의 모든 요리)과 경극으로 황제 대접을 했다. 텐안먼 광장도 통째로 비우고 의장대 사열을 했다. 흡족한 트럼프는 “무역 불공정은 중국 탓이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땐 100여 국 정상급 인사들을 인민대회당에 초청해 성대한 점심을 대접했다. 정상들이 후진타오 주석과 악수하고 사진 찍으려고 수십m 줄을 섰다. 시진핑 주석은 2022년 동계올림픽 때 푸른 물과 용의 형상을 한 수십m의 초대형 식탁에서 정상·외빈들과 황제식 연회를 열었다. 중국 언론은 “당나라 때 만방래조(萬邦來朝·각국이 조공 바치러 온다)가 느껴진다”고 했다.

▶중국은 최근 중앙아시아 5국 정상회의에서 다시 황제 연회를 열었다. 시안의 당나라 황궁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미녀 수십명이 용무늬 호롱을 들고 정상을 맞았고 예술단 500명이 공연을 펼쳤다. 정상회의는 축구장 크기 회의장의 지름 10m가 넘는 대형 테이블에서 열렸다. G7 정상회의에 맞서 세 과시를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유치함을 지우진 못했다. 중국 보도기관들은 또 ‘만방래조’를 읊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 시 주석을 크렘린궁으로 초청해 ‘차르 연회’를 열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성 게오르기 홀에 수십m 길이 대형 식탁을 놓고 4시간 동안 산해진미를 대접했다. 푸틴은 회의나 보고도 초대형 홀에서 왕처럼 혼자 떨어져 앉아 받는다. 정상회담도 5m 길이 테이블에서 한다. 김일성은 1990년 북·일 수교를 위해 일본 유력 정치인 가네마루 신이 방북하자 수십만 군중의 환영식과 매스게임으로 그를 눈물 흘리게 했다. 김정은도 2014년 시 주석의 첫 방북 때 이를 따라 했다. 독재자들이 황제 의전을 좋아하는 건 스스로를 황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동원되는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나라가 우리 바로 옆에 세 곳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