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조선 중기 대사헌을 지낸 양연(梁淵)은 젊은 시절 책을 멀리하다 불혹(40세)에야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대가(大家)가 되기 전엔 절대 손을 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훗날 과거에 급제한 양연이 손을 펴보니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조갑천장(爪甲穿掌)’이란 말은 여기서 나왔다. 효종 때 김득신은 조선의 대표적 만학도로 회갑이 다 된 59세 때 과거에 급제했다. 그는 80세로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사기(史記)는 몇 번 읽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고 한다. 충북 증평군엔 그의 만학 정신을 기리는 문학관이 있다.

▶대만의 자우무허씨는 85세에 손자와 함께 공부를 시작해 대학생이 됐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해 91세에 학사모를 썼다. 98세엔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 세계 최고령 석사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105세 때는 중문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는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끊임없이 전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도 70~90대의 만학도가 적잖다. 못 배운 아쉬움에, 배움의 기쁨을 찾아 학교 문을 두드린다. 여성 기업인 이상숙씨는 올해 나이 92세에 성공회대에서 박사가 됐다. 2년 전 석사에 이어 국내 최고령 박사다. 5년 전 ‘쉴 새 없이 일만 한 나를 위해 쉬는 시간을 갖겠다’며 내린 결정이었다.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공부했고 공부방도 따로 얻었다. “알아가는 즐거움에 계속 공부할 것”이라고 했다.

▶권노갑(93) 민주당 고문이 한국외국어대 영문학과 박사에 도전한다. 10년 전 83세 때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달부터 영시와 영문학, 셰익스피어 등 세 과목을 수강한다. 매일 영자 신문과 시사 영어도 읽는다. 하루 6시간씩 공부해도 힘든 줄 모른다고 한다. “영어만 보면 흥미가 생겨 단번에 외게 된다”고 했다. 그는 6·25 때 유엔군 통역관으로 일했고 목포여고에서 3년간 영어 교사를 했다. 정계 은퇴 후에도 동시통역 대학원에 다니며 영어 개인 교습을 받았고 하와이대에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몇 년 뒤 박사 학위를 받으면 세계기록일 것도 같다.

▶지인이 “건강은 괜찮냐”고 묻자 그는 “걱정이 있다. 골프 티샷이 200m가 안 나간다”며 웃었다. 라운딩 나가면 30~40세 아래 후배들보다 더 멀리 칠 때가 많다. 수시로 달리기와 자전거, 역기 운동도 한다. 그는 “공부에 열중하면 피곤함이 사라지고 건강해진다”며 “배움은 즐거우니 평생 벗을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박사 학위를 받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