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차림에 둥근 안경을 쓴 일본 총리 도조 히데키가 1941년 12월 마이크 앞에 섰다. 미국, 영국을 상대로 개전(開戰) 연설을 했다. “적의 도전을 받아 결연하게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주만 기습 선제 공격을 하는 순간인데도 ‘방어 전쟁’으로 포장했다. 궤변으로 시작한 태평양 전쟁은 궤변으로 막을 내린다. 1945년 8월 일왕 히로히토는 “일찍이 미·영 2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도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히틀러는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교묘하게 꾸며내고 명분 없는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궤변과 선동의 기술자였다. 그는 “인종적으로 우월한 강자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데 우리가 그 과업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 세계사적 사명”이라며 2차 세계 대전에 불을 댕겼다.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는 유대인들이 미국을 움직여 유럽의 반(反)유대주의자들을 절멸시키려 하기에 전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진핑은 부주석 시절부터 6·25의 진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중국의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말 자체가 진실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인민지원군이 (6·25 때)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항거하는 정의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고 했다. 우리를 침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짓밟은 나라의 지도자가 사과는커녕 궤변을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거짓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지만 이 정도면 생각을 제대로 하는 사람인지 의심케 한다.
▶최근 가장 놀라운 외교적 궤변을 하는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략을 ‘특별군사작전’으로 부른다. 러시아 외교장관은 지난 4월 “특별군사작전은 우크라이나 정권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납치한 뒤 “전쟁터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한다. 아이들은 아직도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러시아 외교장관의 17일 궤변은 웃을 수도 없다. 러시아가 북한과 무기 거래로 유엔 대북 제재를 어긴다는 국제사회 비판이 커지자 “러시아가 북한에 제재를 내린 적이 없다. 유엔 안보리가 제재한 것”이라고 했다. “항의는 안보리에 하라”고도 했다. 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10차례가 넘는 유엔 대북 제재 결의는 러시아가 찬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아는데도 자신들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한다. ‘유체 이탈’이라고 해야 할지, ‘제정신이냐’고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