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차관(借款)을 얻기 위해 서독을 방문할 때 고민 중의 하나는 비행기 편이었다. 나라 살림이 전 세계에서 꼴찌에 가까웠기에 독일까지 갈 비행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서독 정부에 부탁해 서울로 날아온 루프트한자기(機)는 박 대통령 일행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홍콩·방콕·뉴델리·로마 등을 거치며 일반 승객들을 태웠다가 내리기를 반복한 후에야 서독 상공에 들어섰다. 꼬박 28시간이 걸렸다.

▶한국과 서독은 1960년대 들어 이색적인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서독 방문 1년 전에 시작된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파견은 독일 사회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경제적인 이유로 서독에 간 근로자들은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했다. “독일 막장은 지하 1000m까지 파고 들어간다. 온도는 최고 38도. 땀이 질퍽해져 양말을 7~8차례 짜야 하루가 끝났다.”(파독 광부 김태우씨) 한국 간호사들은 독일인들이 꺼리는 장애인 돌보기, 야근을 도맡아 했다. 일부는 시체 처리도 군말 없이 했다고 한다.

▶독일 방문 중 파독 근로자를 만난 육영수 여사가 눈물을 흘리는 영상이 남아 있다. “걷잡을 수 없는 격정은 애국가를 핑계 삼아 나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흐느끼게 하고 말았다.” 박 대통령은 이들 앞에서 다짐했다.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박 대통령은 파독 근로자들을 사실상의 담보로 서독 정부로부터 1억5900만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광부 8000명, 간호사·간호조무사 1만1000명이 국내로 송금한 돈과 함께 고속도로, 철도를 깔고 공장을 세웠다.

▶독일에 자주 가본 이들은 안다. 2만명에 가까운 파독 근로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는지를. 지난해 베를린에서 열린 한독 포럼에서도 독일 측 참석자들이 파독 근로자들의 근면함과 성실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올해 수교 140주년을 맞은 한독 관계의 근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취임식에 처음으로 파독 근로자를 초청했다. 정부 공식 초청으로 고국 땅을 밟은 분들은 감격에 겨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독일 파견 근로 60주년 기념식에서 “여러분의 삶이 곧 우리 현대사”라고 했다. “약 2만명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보내온 외화를 종잣돈 삼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 그분들의 눈물을 기억하자. ‘코리안 드림’을 만들려고 오는 외국 노동자들도 좀 더 따뜻하게 맞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