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11년 차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인 루카스 지올리토(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소속)는 등판 전날 꼭 야구 컴퓨터 게임 ‘MLB 더 쇼’를 한다. 선발진과 유니폼, 구장을 실제 경기와 똑같이 설정하고 진지하게 버튼을 누른다.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통산 61승 62패의 이 투수는 “실제 경기에서 위기를 맞으면 전날 컴퓨터 게임 속에서 호투한 공을 떠올린다”고 했다. ‘라이언킹’ 이동국도 “축구 컴퓨터 게임은 이미지 트레이닝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자주 즐기고 있다”고 했다.

▶올 9월 출간된 머스크 전기에는 그의 스마트폰 게임 활용법이 나온다. 그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폴리토피아를 하며 휴식하고, 자신의 사업 계획을 정교화·고도화했다.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전략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게임을 통해 배웠다. 전기 작가 아이작슨은 “머스크에게 컴퓨터 게임은 ‘인생의 전략을 실천하는 은유적 전쟁터’”라고 했다.

▶지난 주말 서울 고척 스카이돔과 광화문에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롤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은 게임이 오락을 넘어 산업이 됐음을 보여줬다. 전 세계 게임 산업 규모는 322조4000억원에 이르고, 미 캘리포니아대 어바인과 스탠퍼드대에 전문 e스포츠 팀이 있을 정도다. 2019년 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코너에 몰렸던 컴퓨터 게임은 이제 현실과 결합해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군사 분야다. 미 공군은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를 기반으로 한 비행 게임을 실제 전투기 조종사 훈련에 사용한다. 조종사들은 게임 속 가상 세계에서 동료와 상호작용하는 법과 합동 전술을 익힌다. 이스라엘이 개발한 최첨단 장갑차 카르멜도 게임이 현실로 넘어온 경우다. 장갑차 조종석엔 파노라마 모니터와 게임 조이스틱이 있다. 장갑차 운전병은 게임을 하듯 조이스틱으로 모니터를 보며 탱크를 조종한다. 18~21세 운전병이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실제 게임 디자인을 적용했다고 한다.

▶게임은 정신 질환 치료법도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라크전 참전 군인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게임과 가상 현실이 활용된다. 당시 끔찍했던 전장 상황을 게임 속 가상 현실로 재구성하고 환자가 게임을 하면서 당시 상황과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테크 업계에선 가상 현실과 결합한 게임이 현실의 새로운 확장판이 될 것이라고 본다. 미래에는 현실과 게임의 구별이 모호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게임이 현실을 어떻게 보완하고 바꿀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