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적인’이란 뜻의 독일어 ‘aufmupfig’는 사전에 없는 사투리였다. 1960년대 말 유럽을 휩쓴 ‘68혁명’ 시위 당시 청년들이 이 단어를 입에 올리며 독일 전역으로 번진 게 단어의 운명을 바꿨다. 독일언어학회가 사전에 등재하며 ‘올해의 단어’라는 표현을 썼다. 메리엄-웹스터, 옥스퍼드, 콜린스 등 유명 사전과 언어학회 등이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의 시초였다.
▶쓰임만 증가한다고 뽑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사회·경제적 함의를 지녀야 한다. 1998년 미국 방언학회가 뽑은 올해의 단어는 ‘e-’였다. e-mail(전자우편), e-commerce(전자상거래)라는 신세계를 주목했다. 2017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젊음’과 ‘지진’을 합성한 ‘유스퀘이크(youthquake)’를 골랐다. 정부가 주도한 브렉시트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그해 총선 때 대거 투표장에 나가 야당에 승리를 안긴 현상을 반영했다.
▶메리엄-웹스터가 2023년 올해의 단어로 ‘진짜’란 뜻의 ‘어센틱(authentic)’을 선정했다. “학생이 실제 논문 저자인지, 정치인이 해당 발언을 정말로 했는지 믿을 수 없다.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조차 믿을 수 없게 됐다”며 “진실성의 위기(crisis of authenticity)를 목도하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특히 생성형 AI를 주목했다. 표정과 목소리를 학습한 AI가 가짜 기시다 일본 총리 동영상을 만들어 총리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하게 했고 죽은 존 레넌의 목소리로 신곡도 불렀다.
▶‘어센틱’ 사용이 증가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진실에 대한 갈망이다. “마케팅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진짜임을 내세워 신뢰를 얻으려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라는 주장도 있다. 올해의 단어에도 반영돼 있다. 메리엄-웹스터는 2006년 ‘트루시니스(truthiness)’를 뽑으며 “사람들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 받아들인다”고 했다. ‘탈진실(post-truth·2016년 옥스퍼드)’ ‘가짜 뉴스(fake news·2017년 콜린스)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대장동 주범은 윤석열’이란 가짜 뉴스를 철석같이 믿고, 있지도 않은 청담동 술파티를 보도한 매체와 국회의원을 질타하기는커녕 후원금으로 응원하는 시대에 진실의 무게는 한없이 가볍다. ‘어센틱’에 ‘진짜처럼 만든’ 가짜라는 상반된 뜻도 있다. 진실보다 입에 맞는 가짜를 바라는 병적 심리가 단어에도 투영된 결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