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5차 솔베이 회의 사진. 아인슈타인(맨 앞줄 가운데), 닐스 보어(두번째줄 맨 오른쪽), 마리 퀴리(맨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하이젠베르크(세째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슈뢰딩거(세번째줄 오른쪽에서 여섯번째) 등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위키피디아, 그래픽=이철원

1510년 라파엘로가 바티칸 성당에 그린 벽화 ‘아테네 학당’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학자들이 한곳에 모여 학문을 논하는 장면을 담았다. 작품 중심에 있는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플라톤,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 주위에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디오게네스, 유클리드 등 54명의 인물을 그렸다.

▶'아테네 학당’은 상상화지만 이에 버금가는 인물들이 모인 순간을 찍은 실제 사진이 있다.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 사진이다.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마리 퀴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인류의 전설과 같은 물리학자들이 모여 있다. 참석자 29명 중 노벨상 수상자가 17명이다. 그래서 이 사진엔 ‘역사상 가장 똑똑한 사진’, ‘인류 최강 정모(정기모임)’, ‘물리학자 어벤저스’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다. 물리학자들이 이 사진에 자기 얼굴을 합성해 넣어 패러디하는 경우도 많다. 벨기에 기업가 에르네스트 솔베이의 기부금 덕분에 최고의 천재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일러스트=이철원

▶이 회의에선 당시 태동한 양자역학 이론이 맞는지 격론이 벌어졌다. 보어가 양자역학에 대해 설명하자 아인슈타인은 자연현상은 확률이 아니라 엄격한 인과법칙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토론 끝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보어가 옳았던 쪽으로 가고 있다.

▶이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공식 한두 개를 만든 사람들이 아니다. 양자역학은 처음 나왔을 때 인류 중 단 몇 사람 외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이론 덕분에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같은 전자 제품들이 탄생했다. 구글은 2019년 양자 컴퓨터로 수퍼 컴퓨터가 1만 년 걸릴 계산을 3분 만에 끝냈다.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은 우주 만물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송두리째 바꿨다. 지금은 GPS(위성항법시스템)의 기반이기도 하다. 사진 속 과학자들이 없었다면 현대는 현대일 수가 없다. 여전히 19세기 정도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29일 자 조선일보 9면에 5차 솔베이 회의 사진을 배경으로 한 전면 광고가 실렸다. 과학 혁신을 이루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광고였다. 사진 속 천재들의 눈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우리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총성 없는 과학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솔베이 사진에 등장할 만한 과학자가 나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