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1년 전 미국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서 ‘구글 엔지니어링의 전설’이라던 인공지능(AI) 연구 총괄 선임 부사장 제프 딘을 만난 적이 있다. 오픈AI의 챗GPT가 막 출시됐지만 아직 주목받지 못하던 때였다. 회색 스웨터에 청바지 차림의 그는 구글의 압도적 AI 기술력을 설명하며 자신만만해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채 한 달이 가지 못했다. 챗GPT 열풍이 불면서 AI 주도권이 완전히 오픈AI로 넘어갔다.

▶구글은 오랜 기간 AI 기술력 1위 기업이었다. 2016년 구글의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는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해 인류에게 충격을 줬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5회 대국해 네 번 이겼다. 이세돌은 2019년 은퇴 이유를 밝히며 “(사람 중) 1인자가 돼도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고 했다. 인간이 AI를 능가할 수 없다는 탄식이었다.

▶한순간에 AI 주도권을 뺏긴 구글은 ‘코드 레드’를 발령하고 천재 AI 엔지니어들을 한데 모았다. 알파고를 만들었던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와 구글의 AI 총괄 제프 딘이 손을 잡았고, 은퇴했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복귀했다. 다시 모인 ‘알파고팀’은 절치부심하며 밤낮 없이 컴퓨터 코드를 짰다. 116조원대 자산가인 브린도 엔지니어들과 나란히 앉아 밤을 새웠다. 이렇게 개발한 대형 AI 언어 모델 ‘제미나이(Gemini)’가 엊그제 공개됐다. ‘쌍둥이자리’란 뜻으로, 이미지·글·비디오를 쌍둥이처럼 동시에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의미로 이름이 붙었다.

▶제미나이는 수학·물리학·역사·법률·의학·윤리 등 57가지 주제를 복합적으로 활용해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테스트에서 90%를 맞혀 인간 전문가의 정답률 89.8%를 최초로 넘어섰다. 구글이 공개한 영상에는 제미나이가 사람이 그리는 스케치를 보며 실시간으로 어떤 그림인지 추측하는 장면이 나온다. 구글 측 수치를 보면 제미나이의 성능은 대부분 항목에서 챗GPT를 앞선다. 다만 그 격차는 작은 정도이고 압도적 우위는 아니란 분석이 많다. AI 패권을 둘러싼 제미나이와 챗GPT의 불꽃 튀는 경쟁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소셜미디어엔 ‘알파고가 돌아왔다’는 말이 나온다. 오픈AI에 뒤처졌던 구글이 알파고팀을 소집해 또 한번 ‘알파고 모먼트(혁신의 분기점)’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앞으로 구글과 오픈AI는 더욱 치열하게 AI를 개발하고 더 빠르게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기업들의 AI 경쟁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그려낼까.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