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서울시가 근무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50대 공무원을 직위 해제했다. 이 공무원은 코로나 후에도 재택근무를 고집하고, 노조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3개월 교육 후 뚜렷한 변화가 없으면 직권면직된다. 서울시 공무원 약 1만명 중 고작 한 명이지만, 일단 제도가 작동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공무원 노조가 이 조치에 합의한 것도 ‘오피스 빌런’에 대한 노조원들 불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짓무른 사과 하나를 방치하면, 바구니 속 사과가 모두 썩는다.

▶고대 로마의 대형 농장(Villa)에 속했던 농부를 뜻하는 ‘빌런(Villain)’은 영화 용어로 많이 쓰였다. 영웅(Hero)을 괴롭히는 악당을 말한다. 미국 영화연구소(AFI)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싸이코’의 노먼 베이츠, ‘스타 워즈’의 ‘다스 베이더’를 100대 악당 중 1~3위에 올렸다. 빌런은 지하철에서 술주정을 하는 ‘1호선 빌런’, 운동복이나 수건을 아무렇게나 두는 ‘헬스장 빌런’ 등으로 ‘폭넓게’ 발전했다.

▶'오피스 빌런’은 민폐의 정도가 크다. 동료의 노동 의욕을 꺾는 것은 물론 기업 생산성까지 떨어뜨린다. 사무실에서 손발톱 깎고, 거침없이 트림을 하는 사람도 ‘빌런’으로 꼽히지만 진짜 악당은 따로 있다. 세 번을 청해야(삼고초려) 일한다는 ‘제갈공명 빌런’, 신기술과는 담쌓은 ‘흥선대원군 빌런’,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파워레인저 빌런’, 퇴근 시간만 되면 하던 일도 내팽개치는 ‘신데렐라 빌런’이 직장인들이 꼽는 악성 빌런이다.

▶‘꼰대’만 악당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업무를 지적하면 울먹거리는 ‘눈물 빌런’, 회사 급여와 복지만 따지는 ‘징징이 빌런’은 주로 젊은 층이라고 한다. 공무원, 공기업 등 주인 없는 회사는 오피스 빌런의 좋은 ‘서식처’였다. 한때 직원이 7000명(현재 약 4000명)이었던 KBS는 헬스장에서 업무를 시작하며 “기둥 뒤에 숨어 정년 퇴직을 맞겠다”는 월급 루팡의 서식처라는 말도 들었다.

▶인력 회사 리쿠르트가 2년 전 814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이 ‘회사에 오피스 빌런이 있다’고 답했다. 유형별로는 ‘갑질·막말형’이 21.1%, 공은 챙기고 책임은 미루는 ‘내로남불형’ 13.5%, 월급날만 기다리는 ‘월급루팡형’이 13.4%였다. 응답자에게 ‘당신이 오피스 빌런은 아닌가’ 물었다. 82.1%가 자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당신 사무실에 빌런이 하나도 안 보이면, 당신이 오피스 빌런이다”라는 농담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