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2012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현지에서 개봉된 ‘2016: 오바마의 미국’은 노골적인 반(反)민주당 영화다. 오바마가 재집권에 성공하면 그러잖아도 좌파 정책에 휘청이는 미국이 결정타를 맞는다는 보수파의 주장을 담았지만 근거가 빈약했다. 4년 뒤 친(親)민주당 영화인들이 반격에 나서 만든 작품이 ‘더 퍼지: 선거의 해’다. 괴물이 된 보수 정치인이 진보 성향 국민을 살해한다는 황당 공포물로 트럼프를 괴물에 비유했다. 둘 다 수준 낮은 작품이었지만 진영의 지지에 힘입어 스크린에 걸리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한국에서 영화와 정치의 관계는 미국보다 더 밀접하다. 정식 분류는 아니지만 충무로 영화가엔 ‘대선용 영화’ ‘총선용 영화’가 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색 짙은 영화를 개봉하면 관객 몰이에 유리하다고 해서 생겨난 현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변호인’과 5·18 소재 영화 ‘택시운전사’, 12·12 사태를 다룬 ‘서울의 봄‘ 등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다. 하나같이 민주당 측이 득을 볼 영화들이다. 그래야 돈벌이가 된다는 것이 우리 영화계의 공식이라고 한다. 이 추세가 심해져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영화를 보고 탈원전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 9일 공개 이후 글로벌 순위 4위까지 오른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 ㅇ난감’이 정치적 시비에 휘말렸다. 드라마 속 악역인 형정국 회장 캐릭터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닮았다는 것이다. 이 대표 지지자들이 반발해 불매운동을 한다는 등 한바탕 논란 중이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2010~2011년 연재된 웹툰이다. 당시에 이 대표는 지금 같은 사람이 아니었고 당연히 웹툰 작가가 의식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원작에 ‘형 회장의 손녀’로만 나오는 캐릭터가 드라마에선 ‘형지수’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다. 그 이름에서 이 대표 형수 욕설 논란을 떠올렸다는 반응이 있다. 형 회장이 수감된 후 외부에서 들여온 초밥을 먹는 장면이 법인카드 유용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내용은 10여 년 전 원작에 있는 것이다.

▶“진보 좌파 취향 작품을 만들어야 장사가 된다”는 게 영화와 드라마의 오랜 불문율이었다. 돈벌이하는 제작자, 감독들과 진보 정치권이 ‘영화 정치’로 마치 협업하는 듯했다. 그런데 ‘살인자~’ 드라마는 사실은 무엇이든 그 반대편 입맛에 맞는다고 해서 오히려 관심을 끌었다. ‘서울의 봄’에는 열광하다가 ‘살인자~’ 드라마는 맹비난하는 것도 내로남불이다. 영화 정치 풍토도 조금 달라지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