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이 “결혼 30년 되도록 쇼핑 가는 것도 싫어하고, 집 인테리어는 관심조차 없던 남편이 갑자기 욕실 용품 등 온갖 싼 생활용품을 사들이고 있어 황당했는데 알고 봤더니 중국 초저가 직구(직접 구매) 앱에 꽂혀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남성이 “실은 지금 내가 찬 시계도 그 앱에서 산 초저가 제품”이라며 그간 사들인 물품 목록과 가격을 죽 읊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쇼핑하러 가서 이것저것 사들이면 “지름신이 강림했다”고 한다. ‘지르다’에 신(神) 내리다”를 붙여 만든 유행어다. 소비 욕구가 자기 의지로 억제하기 힘들 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중국의 초저가 직구 앱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평소 쇼핑 다니기를 귀찮아하던 중년 남성들에게도 지름신이 강림했다. 국내에서 파는 가격의 절반 이하나 4분의 1, 심하게는 10분의 1까지 있다. 싸도 너무 싸니 호기심에 이것저것 구매하는 것이다.
▶초저가를 내세운 중국 직구 앱의 성장세가 거세다. 알리 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세 업체, 이른바 ‘알·테·쉬’의 사용자 수를 다 합하면 1509만명으로, 국내 1위 쿠팡(2982만명)의 50%가 넘는다. 알리바바그룹의 해외 직구 플랫폼 알리 익스프레스는 1년 새 사용자가 2배 늘었다. 작년 8월 뒤늦게 상륙했는데도 테무는 5개월 만에 사용자가 11배 늘었다. 쉬인도 1년 새 4배 늘었다.
▶알리나 테무에서 산 제품을 개봉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을 ‘알리깡’ ‘테무깡’이라고 한다. 1000원, 2000원짜리까지 해외 직구를 하게 됐으니 초등학생들까지 ‘알리깡’ 동영상을 틱톡에 올릴 정도다. 발 빠른 소비자들은 저가 제품도 더 합리적으로 쇼핑하려고 손가락 검색이 바빠졌다. “쿠팡이나 네이버에서 후기가 좋은 제품을 사진 캡처한 뒤 알리에서 검색하면 동일한 제품이 거의 다 나오던데요. 어차피 쿠팡이나 알리나 다 중국산 아닌가요.” ”알리에서는 불량이거나 좀 쓰다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만 삽니다.”
▶”저 어쩌죠? 직장 그만두고 쇼핑몰 창업했는데 중국 직구 앱 때문에 망할 판입니다.” 국내 온라인 유통 업체도 비상이지만 중국산 생활용품, 패션 잡화 등을 수입해서 쿠팡 네이버 등에서 팔던 국내 1인 사업자들이 울상이다. 반도체 등을 둘러싼 미·중 패권 전쟁이 공중전이라면, 중국 초저가 직구 앱의 세계 공습은 개미 사업자들까지 유탄 맞는 육탄전이다. 어느 쪽이 최후 승리자일지 예측하기 힘든 세계 유통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