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동백꽃’ ‘봄봄’을 쓴 소설가 김유정은 결핵을 앓았다. 1937년 봄, ‘돈 백원이 필요하니 우리말로 번역할 만한 탐정소설을 한 권 소개해 달라’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 썼다. 그러나 고기 살 돈을 구하지 못한 채 열하루 뒤 세상을 떠났다. ‘지극한 효행’을 뜻하는 단어 ‘할고(割股)’의 원뜻은 ‘자기 다리 살을 떼 부모에게 먹인다’였다. 모두 고기 구하기 어려웠던 시대 얘기다.

▶고기 먹고 병을 이겨보겠다던 생각엔 의학적 근거가 있다. 동물성 단백질은 체내 흡수율이 높아 많은 영양과 에너지를 낸다. 의사들이 큰 병을 앓은 이에게 고단백 육식을 권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1970년대 독일 프로축구에 진출한 차범근은 유럽 선수와 벌이는 체력전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벽돌 크기 스테이크를 매일같이 먹었다.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이 박항서 감독 지휘로 좋은 성적을 낸 비결 중엔 박 감독이 부임 후 쌀국수 대신 고기를 먹게 해 체력을 끌어올린 것도 있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 때 일본이 외친 것도 체력 단련과 육식이었다.

▶1970년 1년에 5.2㎏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육류 소비가 2020년 54.3㎏으로 50년 사이 10배 넘게 증가했다. 명절에나 맛보는 호사였던 불고기와 갈비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 먹을 수 있는 일상 음식이 됐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은 한 해 38만t이나 소비한다. 해마다 17만t을 수입한다. 반면 쌀 소비는 꾸준히 줄었다. 1970년 1인당 136㎏이던 것이 2020년 56㎏으로 50년 전의 절반도 먹지 않는다.

▶한국인이 지난 한 해 고기를 1인당 60.6㎏ 먹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재작년엔 고기 58.4㎏과 쌀 55.6㎏을 먹어 고기 소비가 처음으로 쌀을 앞지르더니 당초 2027년에나 도달할 거라던 육류 소비 한 해 60㎏도 넘어섰다. 수북한 고봉밥과 초라한 나물 반찬 앞에 앉아 있던 우리가 한 세기 만에 육식 민족으로 탈바꿈했다.

▶70여 년 전 남북으로 갈라진 뒤 양쪽 발전상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고기 소비 격차다. 2012년 북한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13.2㎏이었다는 통계가 있지만 탈북민 얘기를 들어보면 전혀 다르다. 주요 농사 수단인 소를 잡아먹으면 사형당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돼지고기 한 덩이를 솥에 끓여 멀건 국물을 온 가족이 먹는데, 1년에 몇 번이면 괜찮은 집이라고 한다. 북 주민들도 고기를 마음껏 먹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