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지난해 하와이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미국에서는 ‘레이저’가 화재 원인이란 음모론이 소셜미디어로 퍼졌다. 무장 단체가 산을 겨냥해 레이저를 발사해 불이 났다는 소문이었다. 1960년 당시 미국 휴즈 연구소의 연구원 시어도어 메이먼은 높은 에너지를 가진 원자에 빛 에너지를 가하면 더 강한 빛을 낼 수 있다는 이론에 착안해 광자(光子·빛의 입자)를 생성하고 증폭해 쏘는 장치를 개발했다. 영어 약자로 ‘복사 유도 방출에 의한 광증폭’을 뜻하는 ‘레이저(LASER)’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 훨씬 전부터 공상과학(SF) 소설에서 광선총이 등장했다. 1898년 나온 H. G. 웰스의 소설 ‘우주전쟁’에서 지구를 침공한 화성인들은 번개처럼 빛을 내며 상대를 태워버리는 히트레이(Heat Ray)라는 무기를 쓴다. 오늘날 레이저 무기로 대표되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DEW)’의 첫 구상으로 평가받는다. 광선검을 선보인 스타워즈를 비롯해 SF 영화에서도 레이저 무기는 단골 소재다.

▶프레젠테이션 때 쓰이는 저출력 레이저의 초록색 포인터와 달리, 군용 레이저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고출력 레이저를 기반으로 한다. 수술이나 용접 같은 의료·산업용으로 쓰이던 고출력 레이저가 기술 발달로 먼 거리까지 표적할 수 있게 되면서 무기의 영역으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주 영국 국방부가 레이저를 발사해 공중의 무인기를 타격하는 시연 영상을 공개했다. 약 1㎞ 밖의 100원 동전 크기 표적을 맞힐 수 있고, 한 발 쏘는 데 1만7000원밖에 들지 않는다. 전력이 공급되는 한 계속 발사할 수 있어 레이저 무기는 ‘무한 탄창’으로 불린다. 이미 미 육군은 50kW(킬로와트) 레이저를 보병 전투 차량 일부에 시범 장착했고, 해군도 구축함에 60kW 레이저 무기를 달았다. 러시아와 중국도 앞다퉈 레이저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레이저 무기의 한계는 높은 출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미 공군의 항공기 장착용 레이저 무기는 1MW(메가와트) 이상 출력이 필요하다. 전자레인지(1kW)보다 1000배 강한 출력이다. 전장에서 지속적 전원 공급이 쉽지 않은 점과, 엄청난 폐열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다. 레이저 빔을 산란시키는 비·안개 같은 기상 상황도 변수로 작용하고, 움직이는 표적에 수 초 이상 레이저를 맞혀야 하는 점도 한계다. 그럼에도 레이저가 방공 무기의 ‘게임 체인저’로 기대를 모으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벌 떼처럼 등장한 무인기 자폭 때문이다. 21세기 ‘가미카제’와 레이저 무기의 한판 승부가 멀지않았다.

곽수근 논설위원·테크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