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세안축구연맹 챔피언십에서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4강에 진출했다. 태국을 제외한 3국 모두 감독이 한국인이었다. 2017년 베트남 대표팀을 맡은 박항서 감독이 국민 영웅으로 떠오르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한국 신태용과 김판곤 감독을 앞다퉈 영입했다. 2018년 베트남 축구가 사상 처음 아시안게임 4강에 올랐을 땐 제과점에서 박 감독 얼굴을 그려 넣은 ‘4강 케이크’를 팔았다.
▶박항서 감독 이전에 베트남에선 또 다른 한국인이 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베트남 사격 대표팀 박충건 감독이 지도한 선수가 2016 리우에서 베트남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캄보디아 태권도 선수가 2014 인천에서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조국에 안겼을 때, 아프가니스탄 태권도 선수가 이 나라 최초 올림픽 메달을 2008 베이징에서 따냈을 때도 그 뒤엔 한국인 감독이 있었다.
▶양궁, 쇼트트랙, 태권도 등 한국이 전통적 강세를 보이는 종목 지도자들은 세계에 퍼져 있다. 2021년 도쿄올림픽 당시 양궁 종목 참가국 중에서 미국, 호주 등 해외 7국 사령탑이 한국 출신이었다. 최근엔 한국 코치에게 골프를 배우려는 외국 프로·주니어 선수도 늘고 있다. 한국식 시스템을 접목해 강한 정신력을 심어주면서도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은 박주봉 감독은 일본말이 서툴던 부임 초기, 국제 대회에서 남자 선수 전원이 탈락하고도 돌아오는 버스에서 웃음소리가 나자 한국말로 호되게 야단쳤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이긴다. 느그들은 바로 그것이 없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은 훈련에 늦기 일쑤고 튀김을 많이 먹던 선수들에게 분 단위로 쪼갠 훈련 시간표를 만들어줬고 단백질 보충 식단도 짜 줬다. 성공한 K감독들은 선수들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선수에게 직접 마사지기로 발 마사지를 해주고 생일 축하 손편지를 써준 박항서 감독의 ‘파파 리더십’에 베트남이 열광했다.
▶지난달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인도네시아 경기 관중석에 응원 현수막이 등장했다. ‘한국 최고 수출품은 신태용. 미안해요, 삼성.’ 최초 아시안컵 16강 진출 등 부임 후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신 감독이 요즘 인도네시아에서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고 한다.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과 책임감, 근성과 프로 정신을 K감독들이 세계 무대에서 보여줬으면 한다.
/최수현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