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하경

일본의 한 중학교 교장이 편의점에서 ‘레귤러’ 사이즈 컵에 ‘라지’ 분량 커피를 내려받아 마신 게 들통나 파면당했다. ‘레귤러’와 ‘라지’ 컵의 금액 차가 고작 70엔(630원)이고 총 7차례 범행해 490엔(4410원)을 득 봤다. 그 죄로 30년 봉직한 교단에서 쫓겨나고 억대 퇴직금도 못 받는다. 가혹한 징계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일본 주류 사회는 ‘범죄는 범죄’라는 반응이다. 몇 해 전엔 폐기 대상인 학교 급식을 집에 가져간 교사가 징계당했다. 빵 100개와 우유 4200개를 4년간 가져갔다. 교사는 “어차피 버리게 될 것 아까워서”라고 했지만 교육 당국은 “학생 급식을 교사가 왜 손대느냐”며 감봉 처분했다.

▶일본은 그 직업에 직접 관련된 의무를 위반했을 때 더 무겁게 징벌한다. 파면당한 교장은 형사 불기소 처분을 받았는데도 “교육자가 해선 안 될 행위였다”며 교육 당국이 중징계했다. 한 판사는 살인 사건 피해자가 겪은 불행을 소셜미디어에 자세히 올렸다가 유족에게 상처를 줬다는 이유로 파면당했다. 이 판사는 “범죄가 아니지 않으냐”고 항변했지만 일본 대법원은 “재판을 안정적·지속적으로 수행하려면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절대적이고, 판사는 인격과 품위를 해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며 법복을 벗겼다.

▶이를 보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몇 해 전 버스 기사가 잔돈을 두 차례 따로 챙긴 게 들통나 해고됐다. 법원은 ‘운전원의 수익금 착복은 금액을 불문하고 해임을 원칙으로 한다’는 노사 합의서에 따라 해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당연한 판결이었지만 거리에 판사를 비판하는 플래카드가 나붙고, 버스 회사에는 몰인정하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우리나라에선 공직자가 법인 카드를 개인적으로 사용해도, 대학교수가 서류를 위조해 입시 부정을 저질러도, 시민운동가가 불법 대출로 강남에 고가 아파트를 사도, 턱도 없는 성 관련 궤변을 해도 국민이 이들을 지지해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다. 인터넷엔 ‘부끄럽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소수다.

▶19세기 영국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한 인간의 내면에 깃든 선과 악이란 주제를 다뤘다. 그 못지않게 ‘선량했던 지킬이 어떻게 악당 하이드로 변해가는가’도 공들여 그렸다. 지킬은 처음 악의 유혹을 느꼈을 때 하이드가 되기 위해 변신용 약을 많이 썼다. 하이드가 될 때 큰 고통도 겪는다. 그런데 악행을 거듭할수록 약이 덜 필요하고 변신에 따르는 고통도 줄었다. 잘못을 눈감아주는 그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잘못과 일탈이 일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