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젓가락의 기원은 3000여 년 전 중국 은(殷)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은의 마지막 왕 주(紂)는 상아로 만든 젓가락을 썼다. ‘상아 젓가락과 옥그릇을 쓰는 사치’라는 뜻의 사자성어 상저옥배(象箸玉杯)가 여기서 비롯됐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젓가락이 출토된 걸로 볼 때 한반도에서도 지배층의 물건이었다.

▶오늘날엔 사치스러운 식기란 의미는 없고 능숙하게 쓰기엔 까다로운 도구라는 인식이 크다. 일본과 중국은 나무 젓가락을 쓰지만 한국에선 1970년대부터 나무 젓가락보다 미끄러워 불편해도 내구성 좋은 금속 젓가락을 쓴다. 한국인의 금속 젓가락 다루는 솜씨는 젓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발라낼 줄 아는 일본인들 눈에도 경이롭다. 작은 콩자반, 물컹한 두부는 물론이고, 미끄러운 메추리알과 해삼까지 집지 못하는 게 없다. 젓가락으로 김치를 찢고 깻잎 한 잎을 떼어 숟가락에 얹는 걸 본 일본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한국의 금속 젓가락을 사간다.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와 자신이 하나 되는 경지를 표현했다. ‘구르는 바퀴 앞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중략)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 나간다’고 썼다. 많은 한국인이 젓가락을 잡았을 때 그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도 ‘젓가락이 손에서 뻗어나간 손가락처럼 움직인다’며 감탄했다.

▶젓가락이 손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아닌 모양이다. 어제 조선일보에 젓가락질이 치매 예방에도 좋다는 기사가 실렸다. 손은 인체 부위 중 가장 많은 27개 뼈가 몰려 있다. 젓가락으로 식사하면 뼈는 물론이고 연결된 64개의 근육과 관절이 함께 움직인다. 반면 포크는 그 절반만 사용한다. 한 연구에선 뇌파를 재보니 포크보다 젓가락을 쓸 때 뇌가 20% 이상 활성화됐다고 한다.

▶젓가락의 장점이 많지만 강제로 쓰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수 DJ DOC는 젓가락 사용을 강요 말라며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중략) 나는 나예요 상관 말아요’라고 노래했다. 우리 조상들도 의외로 젓가락 사용에 엄격하지 않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저서 ‘사소절’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손에 들지 말라’고만 했다. 김홍도 풍속화엔 한 남자가 젓가락을 X자로 서툴게 쥐고도 반찬을 집어 들며 행복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좋은 사람과 대화하며 즐기는 식사가 건강에 좋다. 그 자리에 젓가락이 도움 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