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세계에서 가장 큰 국기 게양대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동쪽으로 50㎞ 떨어진 곳에 들어선 신(新)행정수도에 있다. 높이 201.9m 2021년 설치됐다. 세계 곳곳에 이런 대형 국기 게양대가 적지 않다. 150m 이상이 7개, 120m 넘는 것도 22개나 된다.

▶나라마다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이집트 게양대는 아랍 민주화 시위로 쫓겨났다가 재집권한 군부가 자신감을 과시하려는 목적이라고 한다. 7개 토후국 연합체인 아랍에미리트는 몇 해 전 120m 국기 게양대를 토후국마다 하나씩 세웠다.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휴전선에 인접한 북한 기정동 마을엔 160m짜리 북한기 게양대가 있다. 2010년 아제르바이잔에 162m 게양대가 서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우리 대성동 휴전선 마을에 있는 99.8m 태극기 게양대를 압도한다며 세웠다고 한다.

▶서울시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내후년까지 100m 높이 국기 게양대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실현되면 국내 최고 높이다. 그 앞에는 ‘꺼지지 않는 불’도 설치한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에서 “대형 깃대는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의 상징이자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대형 게양대를 가진 나라 중에 그런 곳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중인 202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세운 게양대가 175m로 세계 2위다. 사우디, 이란, 파키스탄도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국기를 적극적으로 게양한다. 미국 위스콘신의 시보이건에 세워진 120m 국기 게양대는 세계 곳곳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퇴역 군인에게 감사하는 취지다. 수도 워싱턴DC의 거대한 워싱턴기념탑은 50개 성조기로 둘러싸여 장관을 연출한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20만 명이 사망하자 작은 성조기 20만개를 이 기념탑 주변에 꽂는 추모 행사도 열렸다. 반면, 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과 독일에선 지금도 국민들 사이에 국기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다.

▶해방 이듬해 첫 3·1절 때, 남산 정상에 대형 태극기가 걸리자 많은 국민이 감격했다. 6·25 당시 서울 수복 때 해병대가 광화문 중앙청에 내건 태극기는 피 흘려 지킨 자유를 상징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태극기 부대=낡은 보수’라며 외면하는 이들이 생겼다. 광화문 광장 대형 태극기 게양대가 주변 환경과 어울리겠느냐는 견해도 적지 않은 듯하다. 머릿속 상상과 실제 완성 후 모습은 다를 수 있다. 서울시가 다양한 찬반 견해를 수렴해 합리적 결론을 내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