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경찰이 아버지가 숨겨놓은 거액을 훔쳐 달아난 18세 아들을 특수절도 혐의로 붙잡았다. 아버지가 번 돈을 은행에 넣지 않고 창고 라면 박스에 보관하는 것을 알고 1억여원을 훔쳤다. 그 돈을 오토바이, 옷 등을 사고 술을 마시며 탕진했다. 경찰은 아들을 이틀 만에 붙잡았지만 처벌하지 못했다. 친족 간 재산죄는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규정에 따라 공소권 없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형법 328조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 친족, 동거 가족 등 사이에서 벌어진 절도 사기·횡령 등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법이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게’ 한 것이다. 71년 전인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고 지금까지 큰 내용 변화가 없었다. 가족 간 연대가 끈끈한 동아시아 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하기 쉽지만 로마법에서 유래한 조항이다. 로마법 체계를 이어받은 프랑스, 독일, 일본도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조항을 갖고 있다.
▶그 결과 분명한 범죄여도 친족 사이라면 처벌할 수 없는 일들이 적지 않게 생겼다. 아내가 내연남에게 주기 위해 남편 돈을 빼돌려도, 친족이 장애인 친족을 속여 금품을 갈취하거나 수급비를 횡령해도, 아들이 치매 어머니 재산을 관리하다 빼돌려도 처벌할 수 없었다. 범죄 행위자가 별거 중인 배우자나 자녀를 버리고 떠난 부모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피해자가 노인·장애인·미성년자 등 사회적 약자인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이 조항이 있는 외국의 경우 우리보다 적용 범위가 좁다.
▶방송인 박수홍씨 사건 이후 이 조항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 박씨 부친이 출연료 등을 횡령한 건 친형이 아니라 본인이라고 주장한 이유가 이 조항으로 면책받으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수 있다. 최근 골프 선수 박세리씨가 본인이 아니라 재단 명의로 부친을 고소한 것도 이 조항 적용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법조인들은 친족 간 재산 사건이 들어오면 이 조항 해당 여부부터 따진다고 한다.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 시대로 접어들었다. 3촌까지만 친족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을 정도로 친족에 대한 인식도 변했고 친족 간 재산 분쟁이 빈번해졌다. 헌재가 27일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이런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이렇게 시대에 맞지 않는 법 조항 하나가 사라졌다. 의미가 적지 않지만 시대 변화에 반영하지 못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법 조항이 이것만 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