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북한에 처음 등장한 배지는 ‘레닌 배지’였다. 김일성 일극 체제가 완성되기 전인 1950년대 말 북한 간부들은 소련 공산 혁명에 성공한 레닌의 옆 얼굴이 새겨진 배지를 달고 다녔다. 1966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치자 홍위병을 중심으로 마오쩌둥 배지의 인기가 폭발했다. 한 달 생산량이 5000만개를 넘었다는 기록도 있다. 신(神)과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당 추종자들이 레닌과 마오쩌둥 얼굴이 들어간 배지를 십자가나 염주처럼 모시고 다녔다.

▶김일성은 정적 숙청을 완료한 뒤인 1970년 ‘김일성 배지’를 공개했다. 처음엔 레닌 배지처럼 옆 얼굴이 들어간 도안이었다고 한다. 우상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다양한 얼굴 사진과 형태의 배지가 나왔다. 전 주민이 달도록 했다. 배지를 ‘초상(肖像) 휘장’으로 부르게 했고 집집이 김일성 초상화도 걸게 했다. 배지나 초상화엔 반드시 “모신다”는 표현을 써야 했다. 숭배하라는 것이다. 배지를 안 달아도 되는 사람은 김일성뿐이었다. 자신이 자신을 숭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도 1992년 ‘김정일 배지’를 만들었다. 노동당 깃발 안에 얼굴이 새겨진 당원용 배지가 귀한 대접을 받았다. 김일성·김정일 얼굴이 같이 새겨진 ‘쌍상(雙像) 배지’는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다. 비당원 등이 사서 으스대려고 했다. 외국인이나 한국 사람이 배지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어버이 얼굴을 파는 X도 있냐”며 화를 냈다.

▶북한의 당·정·군 간부들이 전부 ‘김정은 배지’를 단 사진이 지난 30일 처음 공개됐다. 지난 5월엔 각 가정에 김정은 초상화도 배포했다. 김일성에게만 써왔던 ‘태양’과 ‘어버이’ 호칭을 김정은에게 붙이고 있다. 김정은 우상화가 완성 단계라는 뜻이다.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는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지 않고 등장하곤 한다. 김정은 옆에서 의전을 하던 여성도 배지 자리에 은색 브로치를 달았다. 대다수 북 주민이 한국 드라마를 보는 시대다. 김정은 자신부터 배지의 우상화 효과를 믿지 않을 것이다. 이제 김씨 정권에 남은 건 공포 통치와 핵 정도다. 사람을 고사총으로 부수고 소각하는 처형을 목격한 주민들은 트라우마로 옴짝달싹 못 하게 된다고 한다.

▶최악의 경제난이 이어지며 김씨들 배지 가치도 폭락했다고 한다. 북·중 국경 지역에선 김일성 얼굴이 들어간 배지와 화폐가 싸구려 기념품으로 팔린다. 세계 각국 공항에서 남루한 차림에 붉은 배지를 달고 있으면 북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현지인들에게 멸시당한다. 김씨들 배지가 노예 마크와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