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책갈피에 아내 몰래 비자금을 숨겨 온 남자가 돈 쓸 일이 생겨 책장을 뒤졌다. 그런데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200권 넘게 뒤지도록 돈이 안 나왔다. 책 버릴 때 쓸려나갔나 불안해질 때쯤 아내가 방문을 열었다. 남편은 시치미 뗐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책을 본 아내는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뒤 출근한 남편에게 아내가 전화했다. “여보, 돈 찾았어요.” 들통난 비자금은 아내에게 압수당했다. 영문학자 박일충의 수필집 ‘어바웃 계당선생’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책장에만 돈을 숨기는 것은 아니다. 냉장고, 밥솥, 어항, 신발장 등에도 숨긴다. 그렇게 숨긴 돈이 실수로 버려지곤 한다. 한 남성은 낡은 밥솥을 무심코 버렸다가 오래전 그 안에 현금 1000여 만원을 넣어 두었던 것이 기억났다. 열흘 넘게 CCTV를 추적한 끝에 한 고물상에서 돈이 든 밥솥을 찾았다. 과거 검찰이 어느 미술관을 압수 수색하다 거기에 10여 년간 보관돼 있던 다른 사람 현금 60억원을 발견한 일도 있었다. 평생 모은 돈을 세탁기 밑에 보관해온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돈의 존재를 아예 잊었다가 주변 도움으로 되찾거나, 온라인으로 산 중고 냉장고에서 돈다발이 쏟아져 나오는 등 별별 일이 다 있다.
▶인천 서구의 수도권 매립지엔 이처럼 잘못 버려진 돈이나 귀중품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쓰레기통에 돈을 숨겼는데 가족이 내다 버렸다며 오는 이도 있다. 귀금속일 경우 매립지 직원들이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해 함께 찾지만 대부분 허탕이다. 외국에선 거액의 비트코인이 보관된 하드디스크를 버렸다가 쓰레기 매립지를 뒤진 이도 있다.
▶서울 반포의 한 고가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실수로 버려진 금괴 여러 개를 청소원이 발견해 주인에게 돌려줬다. 강남의 일부 고가 아파트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아 ‘노다지 광산’으로 불린다고 한다. 분리수거장에서 100만원 수표 100장이 든 봉투가 발견된 아파트도 있다. 집안 어딘가 있는데 찾지 못하는 돈이나 귀중품을 찾아주는 업체도 등장했다. 미국 사정도 마찬가지인지 고급 주택가 쓰레기통을 뒤져 귀금속이나 현금을 사냥하는 ‘덤스터 다이버(dumpster diver)’란 직업도 있다. 주당 1000달러 넘게 벌고 가끔 대박도 난다.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금괴가 나오자 인터넷에 ‘최고가 아파트 분리 수거장의 위엄’이란 우스개와 함께 ‘배우자에게 숨긴 비자금’ ‘과거 정권의 비자금’ 같은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우습기도 하지만 왠지 씁쓸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