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학교 다닐 때 개근상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선생님들은 여러 상 중에서 개근상이 가장 값진 상이라고 말하곤 했다. 결석이나 지각·조퇴가 있어서 정근상이라도 받으면 오점이 남는 줄 알았다. 꾀병을 부리면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파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덕분에 초·중·고교 12년 동안 빠짐없이 개근상을 받았다.

▶요즘 학교에선 가족여행 등 사유를 밝히면 일정 기간은 교외 체험 학습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가 있다. 2007년 도입한 이 제도 덕분에 결석 처리에 대한 염려 없이 자녀와 다양한 목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교외 체험 학습은 해당 학년 수업 일수의 10% 이내에서 사용할 수 있다. 연간으로 따지면 15~19일 정도다. 할아버지 제사, 친척 결혼식 같은 가족 행사에 다녀오는 것도 수업에 참여하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라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시대가 변해 요즘엔 출석 자체에 목을 매지 않는 것이다. 개근상 자체도 사라져 가고 있다. 대신 생활기록부에 ‘개근’이라고 써주는 것이 전부다.

▶미국에선 학생들 결석률이 크게 증가해 고민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공립학교 학생 26%가 전체 등교일의 10% 이상, 즉 18일 넘게 상습적 결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상류층은 가족여행에 데려가느라, 저소득층은 통학 여건이 좋지 않다는 등 사정 때문에 결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아침에 일어나 통학 버스를 타고 수업 시간에 맞춰 등교하는 뿌리 깊은 습관”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학기 중 체험 학습을 가지 않고 꾸준히 등교하는 학생이 ‘개근 거지’라는 놀림을 받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개근 거지’란 학기 중 외국 여행을 가지 못하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뜻한다고 한다. 한동안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뜸해졌다가 근래 해외여행이 늘면서 다시 ‘개근 거지’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최근 한 해외 매체는 친구들에게 이 말을 듣고 우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달래기 위해 저렴한 해외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다는 한국 아버지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얘기는 일부 학교, 극히 일부 학생 얘기를 부풀린 것일 가능성이 높다. 가족과 떠나는 해외여행도 교육적이겠지만 학생이 성실하게 등교해 공부하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는 일의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 ‘개근’은 낡은 구시대의 유물일 수 없다. 개근에 담겨 있는 성실, 책임, 인내, 규칙 준수와 같은 덕목은 시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