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미 연방 검찰이 2021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친구인 조셉 버락(77)을 ‘외국 대리인 등록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미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아랍에미리트(UAE)를 위한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버락은 억만장자로 2017년 트럼프 취임위원회 위원장도 지냈다. 돈이나 이념 때문에 외국에 정보를 넘길 사람이 아니었다. 미국과 동맹인 UAE는 미 공군 기지까지 두고 있다. 그런데 미 정보 당국은 2016년 버락이 이메일로 사업 파트너였던 UAE 외교관과 접촉한 사실을 확인하자 5년간 그를 추적했다. 버락은 평소처럼 미국과 UAE 친구들을 연결해주고 UAE에 대한 미국의 생각 등을 전해줬다. 간첩과는 거리가 멀었는데도 감옥에 갇혔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2017년 일본인 6명이 중국 산둥성 일대에서 온천 개발을 위해 측량을 하다가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그들의 노트북 등에 저장된 사진과 지도가 문제였다. 산둥성에 있는 중국 북해함대 사령부의 일부 모습이 사진에 찍혔는데 간첩 증거라는 것이다. 중국 지방 곳곳에는 군부대가 있고 공식 지도에는 위치가 나오지 않아 외국인은 부대인지 농장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중국 법원은 일본인 2명에게 징역 15년과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일본 정부의 항의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중국의 국공 내전 당시 국민당 정보 총책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자 승부의 추가 공산당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국민당 정보 통제가 느슨해졌고 국민당군 작전 지도가 마오쩌둥 책상 위에 올려졌다. 중국은 지난해 ‘반(反)간첩법’을 대폭 강화했다. 한국 관광객이 압록강변에서 북한을 향해 사진을 찍어도 잘못 걸리면 ‘제3국(북한) 겨냥 간첩’ 혐의를 쓸 수 있다.

▶미 연방 검찰이 미 중앙정보국 출신의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외국 대리인 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가 한국에 넘겼다는 내용엔 비밀 사항이 없다. 그런데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밀을 넘기지 않아도 미 정부에 신고 없이 외국 인사와 밥 먹고 선물 받으면 감옥에 간다는 것이다.

▶미국이 ‘외국 대리인 등록법’을 만든 건 1938년이다. 당시는 나치의 파괴적 선전·선동에 대응하려는 목적이었다.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면서 미국 정부와 의회에 선을 대거나 영향을 미치려는 외국에 경고하는 수단으로 이 법을 이용하고 있다. 독일·프랑스·러시아처럼 과거 제국을 꿈꿨던 국가들도 유사한 법률이 있다. 강대국의 정보 집착을 잘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