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아일랜드 뇌과학자가 “권력을 쥐면 남녀 구분 없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한다”고 했다. 이 호르몬은 뇌에 만족감을 주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마약과 같은 효과를 두뇌에 일으킨다. 권력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해 한번 맛을 보면 스스로 끊기가 매우 어렵다. 권력과 마약은 충동을 조절하는 뇌 전두엽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같다. 권력 중독자에게 ‘당선이 어려우니 출마하지 말라’는 것은 마약 중독자에게 ‘약을 끊으라’고 하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9세 때 상원의원이 됐다. 미국 사상 최연소다. 첫 결혼 직후 입양한 강아지 이름을 ‘상원의원(Senator)’으로 지을 만큼 권력 의지가 있었다. 그런데 당선 한 달 만에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 두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바이든은 “좋은 상원의원은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지만 좋은 아버지는 찾을 수 없다”며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의원직을 포기하려 했다. 주변 설득으로 마음을 바꿨지만 아이들에게 반드시 돌아온다는 걸 확신시키려고 집에서 워싱턴까지 177km 거리를 매일 4시간씩 기차로 왕복했다.

▶바이든은 내리 7선에 성공하며 오랫동안 상원 외교위를 이끌었다.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코소보 사태에 미군 개입을 이끌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휴가 중에도 바이든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바이든은 김정은·시진핑·푸틴 등을 공개 석상에서 “Thug(깡패 자식)”라고 부를 만큼 독재자들을 혐오했다. 이라크에서 무슬림 죄수 학대를 조장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을 향해선 “패주고 싶다”고 했다. 미국의 고립주의를 경계했다. 전임인 트럼프가 헝클어 놓은 외교·안보 실타래를 하나씩 풀었다. 작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 것도 바이든의 ‘동맹 중시’ 덕분이다.

▶엊그제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사퇴했다. 바이든은 상원·부통령 선거에서 진 적이 없다. 경선만 통과하면 모두 이겼다. 이번에도 트럼프와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긴 했지만 선거는 100일 이상 남았다. 때로는 극적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도 “당과 국가를 위해서”라며 선거를 접었다. 트럼프를 막기 위해 자신을 포기한 것이다.

▶'어차피 질 선거 일찍 그만둔 것’이라는 폄훼도 있겠지만 권력 중독자들이 득실대는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모습인 것은 사실이다. 링컨은 “사람 됨됨이를 알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고 했다. 한때 ‘노추’로 비판받던 바이든의 뒷모습에서 멋진 일몰 풍경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