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미 프로야구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 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해발고도 약 1600m에 자리 잡아 공기 저항을 덜 받기 때문에 타구가 더 멀리 날아가 홈런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구단 측이 도입한 시설이 ‘야구공 가습 저장고’다. 습기를 머금은 공이 사용되면서 홈런 수가 25%나 줄었다.

▶스위스 물리학자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는 최초의 습도계를 개발한 인물로 꼽힌다. 그가 1783년 내놓은 첫 습도계는 머리카락의 수분 흡수 정도에 연동한 도르래와 눈금의 움직임으로 습도를 계산하는 ‘모발 습도계’였다. 비 오는 날 곱슬머리가 고불고불 더 말리고, 펌(파마)한 머리의 모양새가 죽는 것도 공기 중 물 분자가 모발의 케라틴 단백질에 작용해 머리카락이 변형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습도는 공기가 최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 대비 현재 수증기량의 비율을 말한다. ‘상대 습도’라고 한다. 최대 수증기량이 100인데 현재 수증기량이 80이면 습도가 80%라는 식이다. 반면 절대 습도는 대기 1㎥에 섞여 있는 수증기의 양(g)을 나타낸다. 상대 습도 100%는 현재 기온에서 공기 중 수증기가 포화에 달했다는 의미다. 이를 넘어서는 수증기는 공기가 더 이상 품지 못해 물로 응결된다. 샤워할 때 욕실 벽면에 송골송골 맺히는 물방울이 그런 예다.

▶여름철 높은 습도는 땀의 증발을 저해하며 체온을 낮추지 못해 열사병을 유발한다. 세균 번식을 확산해 식중독과 같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 지수를 높여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높은 습도가 바이러스의 감염력을 더욱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인체 건강에 대한 영향뿐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산 등 각종 산업 현장에서도 높은 습도는 통제해야 하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의 7월 평균 습도가 80%를 넘어섰고, 일부 지역에선 습도 100%를 기록해 ‘사우나’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욕실 바닥에 물이 흥건하고 빨래가 마르지 않는다는 등의 고충이 쏟아지고 있다. 보통 적도 인근의 동남아나 페루 리마, 두바이처럼 해양 영향권 도시의 습도가 높지만, 최근에는 고(高)습도 지역의 범위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여파로 수증기가 산업혁명 시대 대비 5% 이상 증가하면서 지구 대기가 갈수록 습해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제습기 업계는 호황이다. 습도 100%를 향해 다가가는 기후변화가 제습기를 지구촌의 ‘필수 가전’으로 만들 모양이다.

곽수근 논설위원·테크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