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우리나라는 한때 부정선거가 횡행하던 국가였다. 1960년 3·15 대통령 선거 당시 여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지 40%를 미리 이기붕 표로 채워 놓는 ‘4할 사전 투표’, 3~5인조 공동 투표, 검표 과정에서 야당 표를 떨어뜨린 뒤 줍는 척하며 지장을 잔뜩 찍어 무효표로 만드는 ‘피아노표 만들기’ 등 갖은 수법이 동원됐다. 여당 득표율이 99%까지 치솟자, 득표수를 급히 끌어내리기도 했다.

▶30년 전쯤, 한 러시아 정치인이 모스크바 주재 한국 특파원에게 한국 부정선거에서 힌트를 얻은 선거 필승 전략이라면서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투표 전날 밤, 유권자를 찾아가 A후보가 주는 거라고 하면서 고급 보드카를 뿌린 다음, 1~2시간 뒤 ‘잘못 전달됐다’면서 도로 가져온다. 상대방 표를 내 표로 돌리는 데 이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한국은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거듭났지만, 러시아에선 여전히 부정선거가 횡행하고 있다. 2011년 러시아 총선에서 푸틴 대통령의 정당이던 통합러시아당을 1당으로 만드는 개표 조작 과정에서 7개 정당 득표율이 유권자 수보다 훨씬 많은 146%를 기록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2년 전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 지역 4곳 편입을 위한 주민 투표를 강행할 때는 기표를 마친 투표용지를 선관위 직원에게 펼쳐 보이고, 접지도 않은 채 ‘투명 투표함’에 넣는 투표를 진행해 세계를 경악케 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선 2004년 친러 정권의 부정선거에 국민이 들고일어나 정권을 바꾸는 ‘오렌지 혁명’이 있었다. 출구 조사 결과 친서방파 유셴코 후보가 11% 앞섰는데, 중앙선관위가 친러파 야누코비치 후보가 3% 더 득표했다고 발표하자, 전국적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대법원의 재선거 결정으로 유셴코가 대통령이 됐다.

▶엊그제 베네수엘라에서 좌파 포퓰리스트 마두로 대통령이 저지른 부정선거는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출구 조사 결과, 야당 대통령 후보가 65% 득표율로 마두로(31%)를 압도했지만, 중앙선관위는 “마두로가 51.2%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국영TV 개표 방송에서 대통령 후보자 5명의 득표율 합계가 109%로 나왔다. 마두로와 야당 후보를 뺀 나머지 후보들 득표율이 소수점 자리까지 똑같은 상황도 있었다. 국민 저항이 거세지자 마두로는 갱단을 진압에 투입하고 있다. 이런 베네수엘라를 무슨 ‘이상향’이나 되는 듯이 떠받든 한국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