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삼가 고철의 명복을 빕니다.” 최근 경북 구미 시청의 ‘1호 로봇 주무관’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파손되자 네티즌들 사이에 ‘로봇 과로사’라는 말이 번졌다. 구미시는 작년 8월에 행정 서비스 로봇을 도입해 공무원증도 붙여주고 임명식까지 했다. 우편물과 행정 서류 등을 배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도입 1년도 안 돼 계단에서 추락해 부서지니 “일이 너무 힘들었나 보다”라며 감정이입을 한 댓글이 많이 붙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물류 창고에 ‘채용’돼 시험 운행 중인 2족 보행 로봇 ‘디지트’는 ‘과로사 로봇’으로 일약 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지난해 3월 시카고에서 열린 물류 박람회에서 20시간 연속 작동하다 픽 쓰러지는 영상 때문이다. 충전만 하면 벌떡 일어나는 로봇인데도 ‘측은하다’는 동정론을 받았다. 로봇도 과로하면 쓰러지는데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냐며 많은 이가 감정을 투사했다.

▶2015년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4족 보행 로봇 ‘스폿’을 공개하면서 발로 강하게 밀치는 테스트 영상을 올렸다. 로봇 기술력을 자랑하는 영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로봇 학대’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호주에서는 술 취한 여성이 로봇 개 ‘스탬피’를 걷어찬 영상에 공개됐다. 일부 네티즌이 ‘스탬피를 위한 정의’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며 그 여성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국내에서도 야당 대표가 로봇 박람회에서 4족 보행 로봇을 뒤집었다가 로봇 학대 논란이 일어났다. 그는 “(나를) 난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로봇일 뿐인데도 일본에서는 반려견 로봇 ‘아이보’의 합동 장례식까지 열린다. 절에서 문상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지 스님이 불경까지 낭독한다. 아이보는 일본 소니가 1999년 출시해 2006년 생산 중단한 반려견 로봇이다. 15만대가량 팔렸는데 수리마저 중단되자 아이보 주인들이 낙담했다. 외로운 노인들에게 가족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소니 출신 엔지니어가 수리 회사를 차리고 전국에서 고장난 아이보를 기증받아 그 부품으로 다른 아이보를 수리한다. 더 이상 작동 안 하는 아이보를 해체하기 전에 2015년부터 장례식을 치러주기 시작했다. 로봇이 아니라 아이보에 의지해 외롭게 살아온 사람들을 위로하는 절차다.

▶요즘 주부들 사이에 “우리 집 이모님”으로 불리는 존재는 로봇 청소기, 식기세척기, 건조기다. 가사 도우미처럼 집안일을 척척 해주기 때문이다. 로봇도, 가전제품도 놀랍게 똑똑해지니 절로 의인화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