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딸 클로드를 깊이 사랑했다. 어느 날 기자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며 독신인 딸의 출산 소식을 알렸다. 손자를 품에 안고 웃음 짓는 ‘대통령 할아버지’ 사진을 본 프랑스 국민들도 함께 기뻐했다. 한국인 교수가 프랑스인 제자에게 “자네도 결혼해 가정을 꾸려야지”라고 하자 제자가 놀란 눈으로 “제 부모님도 결혼하지 않으셨는데, 왜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동거나 미혼 상태로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가 처음부터 동거나 비혼 출산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유럽의 다른 기독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결혼만 신성시했고 혼외 출산을 결혼의 오점으로 취급했다. 혼외자를 경멸하는 의미로 쓰는 영어 단어 ‘bastard’는 불어 ‘bâtard’에서 왔다. 우리말 ‘사생아’도 비혼 출생을 문제시하고 혐오하는 단어다.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프랑스는 유럽의 대표적인 저출생 국가였다. 이원복 교수가 그린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프랑스 편엔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가 프랑스 국기를 들고 ‘우리나라’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프랑스의 소멸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아이 낳기를 꺼리는 이유로 결혼 밖 출산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지목되자 1999년 사실혼을 보호하는 시민연대계약을 도입했다. 동거 중 태어난 아이를 방치하던 관행도 개선되며 1.76명까지 추락했던 합계 출산율이 반등했다.

▶우리나라 전체 신생아 중 비혼 출생아의 비율이 지난 2분기 4.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OECD 평균인 41.9%에 비하면 여전히 매우 낮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명도 안 된다. 출생률을 높이려면 결혼한 남녀만 ‘합법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작은 노력들도 있었다. 2020년엔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윤리 지침을 바꿔 난임 시술 대상을 법률혼 부부에서 사실혼 부부로 확대했다. 그러나 ‘비혼 여성 등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의 시술은 제한한다’고 규정했다. 의사들이 의학적이지 않은 이유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약할 권한이 있는지 의문이다.

▶방송인 사유리씨처럼 결혼은 안 해도 엄마는 되고 싶은 여성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비혼 출산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은 출생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아기는 축복 속에 태어나 사랑 받으며 자라야 한다. 비혼 출생아도 그럴 수 있다는 걸 다른 나라들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