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육체 노동자를 뜻하는 블루칼라(blue-collar)라는 말은 1920년대 미국 신문 구인 광고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옷깃(collar) 색깔로 직업 세계를 구분한 것이다. 당시 미국의 육체 노동자들은 청바지에 청색 셔츠를 주로 입었다. 과거엔 불황이 닥치면 블루칼라부터 희생양이 됐다. 기업들이 ‘생산 감축’ 카드를 먼저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며 블루칼라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인구 고령화로 인한 생산 인구 감소, AI 기술로 대체하기 어려운 육체 노동 재평가 등으로 블루칼라의 몸값이 크게 올라 ‘빈익부 부익빈’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코로나 팬데믹이 사무직에겐 해고 광풍을 안겨준 반면 블루칼라에겐 전화위복이 됐다. 재택근무 확산과 더불어 주택 유지·보수 수요가 크게 늘면서 배관공, 용접공, 목수, 조경사 등의 몸값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숙련 배관공의 연봉(약 1억2000만원)이 석사 학위자 평균 연봉(1억1500만원)보다 높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 다니면 도둑놈)로 상징되는 화이트칼라의 약점이 부각되며 블루칼라 직종으로 갈아타는 청년이 늘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도배사로 전업한 한 여성은 “노력한 만큼 기술이 늘고 성장하는 재미가 있는 정직한 직업”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다 페인트 도장공으로 변신한 30대 남성은 “오래 할수록 기술이 늘고, 내가 하는 만큼 보상이 주어지니까 만족도 120%”라고 자랑한다.

▶각종 소셜미디어(SNS)에서 블루칼라 직업 세계를 소개하는 동영상도 인기다. 조회 수 100만을 넘는 콘텐츠도 많다. 청년들은 이런 영상을 통해 일당 42만원의 특고압 케이블 작업공처럼 고소득 블루칼라가 많고, 깨끗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며, 칼출·칼퇴(일정한 출퇴근 시간)의 워라밸도 가능하다는 점에 놀란다. 정년이 없고, 땀 흘린 만큼 정직한 보상을 받는다는 블루칼라의 장점도 주목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이 아직 남아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직업의 위세’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를 했더니, 한국에선 국회의원이 1위, 건설 일용 근로자가 최하위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 독일에선 소방관이 1위, 음식점 종업원이 꼴찌였다. 미국의 주택 수리공들에게 자식에게도 당신 직업을 권하겠느냐고 묻자 94%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