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추석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장에 가서 자식들 옷을 한 벌씩 사오셨다. 명절 아니면 새 옷을 입기 힘든 시절이라 추석 때면 어머니가 어떤 옷을 사 오실지 기대에 부풀었다. 어머니가 내놓은 옷은 언제나 가을에 입는 긴팔에 긴바지였다. 그 옷을 입어도 이른 아침 성묘를 가면 추워서 몸이 떨릴 때가 많았다.
▶올 추석(17일) 연휴엔 긴팔은 상상도 못 할 것 같다. 추석 연휴에 한낮 기온이 평년 기온보다 5도 안팎 높은 30도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한반도 대기 상층엔 티베트고기압, 중하층엔 북태평양고기압이 자리 잡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30도 이상이면 해수욕을 할 수 있을 기온이다. 보름달이 뜨는 한가위 밤조차 열대야일 수 있다고 한다.
▶추석은 음력을 기준으로 쇠는 명절이라 날짜 변동 폭이 크다. 빠르면 9월 8일(1976년, 2014년), 늦으면 10월 8일(1919년, 1938년)까지 올 수 있다. 윤달이 앞쪽에 가까이 있을수록 추석이 늦어지는데 올해는 그 반대여서 비교적 이른 추석을 맞았다. 아직 과일들이 다 익지 않았고 들판의 벼도 아직 누런 빛이 덜 들어 햅쌀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올해만 유별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계절은 흔히 봄(3~5월), 여름(6~8월), 가을(9~11월), 겨울(12월~이듬해 2월) 등 3개월 단위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 온난화로 여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기상학적으로 가을 시작일은 ‘일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이다. 이 기준으로 한반도의 과거(1912~1940년) 가을 시작일은 9월 17일이었지만 현재(1991~2020년)는 9월 29일로 12일이나 늦어졌다. 추석이 분포하는 기간의 3분의 2 정도는 실제로는 여름인 것이다. 요즘 같으면 추석이 아니라 하석(夏夕)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외국 사람들이 추석에 대해 물으면 한국의 추수감사절이라고 답하곤 한다. 미국은 추수감사절을 양력 11월 넷째 목요일로 정해 놓았다. 어느 지역이나 추수가 끝날 시기다. 프랑스의 가을 명절인 투생(La Toussaint)은 11월 1일, 러시아판 추석인 성 드미트리 토요일은 11월 8일 바로 앞의 토요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전혀 쓰지 않는 음력을 추석날로 고집하다 보니 추석 날짜가 들쭉날쭉이다. 우리도 양력으로 10월 초순쯤 금요일을 추석으로 정하고 목금토일 4일 연휴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10월이면 가을 맛도 물씬 나고 연휴 불확실성도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