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열려라 참깨’는 비밀번호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다. 나무꾼 알리바바는 도둑들이 보물을 숨겨 둔 동굴을 여는 주문을 엿들어 부자가 된다. 알리바바의 형이 그걸 알고 동굴에 몰래 들어갔다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린다. 도둑들에게 붙잡힌 형은 사지가 절단된 채 죽음을 맞는다. 왜 하필 ‘참깨’였을까. 중세 아랍어 참깨(simsim)에는 ‘문(門)’이란 뜻도 있다고 하는데, 정설은 아니다.

▶1940년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지휘한 미 육군 장군이 부임 첫날, 극비 문서를 보관할 금고를 보고 ‘당장 가장 튼튼한 금고로 바꾸라’고 호통을 쳤다. 그런데 1주일도 안 돼 비밀번호를 잊었다. 금고 업체 기사를 불렀더니 20분 만에 문을 열었다. 금고를 만들 때 기본 세팅된 비밀번호를 그대로 썼던 것이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 박사가 “그런데 왜 20분이나 걸렸느냐”고 물었더니 “출장비를 받으려 적당히 시간을 때웠다”고 했다.

▶냉전 시절 미국 지하 격납고에 저장된 핵미사일의 발사 비밀번호가 ‘00000000′ 상태로 15년간 사용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962년 국무장관이던 로버트 맥너마라가 사임한 뒤 비밀번호 때문에 미사일 발사가 늦어질까 걱정한 방공전략사령관이 비밀번호를 이렇게 바꿨기 때문이다. 글로벌 보안업체가 선정한 ‘최악의 비밀번호’ 1위는 ‘12345′이다. 그런데 민간 해킹 단체 어나니머스가 시리아 독재자 알 아사드 대통령의 이메일을 해킹한 결과 ‘12345′를 비밀번호로 쓰고 있었다.

▶휴대폰, 이메일, 금융 거래, 쇼핑 등 현대인의 일상과 비밀번호는 불가분의 관계지만,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주기적으로 새로 설정해야 하는데, 많게는 20~30개씩 되다 보니 쉽게 까먹고 관리가 너무 어렵다. 어떤 사람이 휴대전화 메모장에 비밀번호를 계속 업데이트해 왔는데, 메모장을 여는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패닉에 빠지는 모습도 봤다.

▶비밀번호 스트레스가 싫은 사람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2007년에 만든 ‘영문 대소문자, 숫자, 특수문자 1개 이상 포함’, ‘90일마다 변경’ 같은 비밀번호 설정 기준을 폐기했다. NIST는 대신 ‘GoodbyePasswordForever’(잘 가라 비밀번호)같이 기억하기 쉬운 문장형 비밀번호를 쓰라고 권고했다. 이렇게 길어도 22개 글자인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24자리라는데,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