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학교 지리 선생님이 한국 기후 특성을 가르치며 칠판에 “새마을 운동 전만 해도 많은 논이 천수답이어서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못 지었다”고 썼다. 학생들은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천수답’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天水畓’이라고 한자를 쓰고 “하늘에서 비가 와야 농사짓는 논이란 뜻”이라고 설명하자 그제야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는 “한자만 알려 줘도 문장을 더 잘 이해하더라”라고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올해 한글날을 맞아 실시한 조사에서도 한자 능력과 문해력의 상관관계가 새삼 지적됐다. 고 3 학생이 ‘풍력(風力)’을, 중3이 수도(首都)의 뜻을 몰라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진다. “가로등은 세로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이냐?”거나 “대충돌(大衝突)은 ‘대충 만든 돌[石]’ 아니냐?”고 묻는다. ‘막역(莫逆)한 사이’라고 하면 ‘막연한 사이’를 잘못 쓴 줄 안다.
▶이런 빈약한 어휘로 독해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이번 설문에서 일선 교사 92%가 “학생들 문해력이 전보다 떨어진다”고 대답했다. 학생 5명 중 1명은 남의 도움 없이는 교과서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교사들은 시험문제를 내면서 아이들이 잘 풀까 걱정하기 전에 질문이나 이해할까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라고도 했다.
▶다만 청년 세대의 문해력 자체가 낮다고 볼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지금 청소년과 20~30세대는 어려서부터 외국어를 모국어 못지않게 접하며 자란 국제화 세대다. 성경을 읽다가 한자어 앞에서 막히면 부모 세대는 사전을 뒤졌지만 요즘 청년들은 인터넷에서 영어 문장을 찾아 읽고 정확한 의미를 파악한다. ‘이성 교제’라 하면 못 알아듣고 ‘데이트’라 해야 고개를 끄덕인다. 문장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말 70%가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해력의 근본 원인은 한자 이해력인 것이다.
▶교사들은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고 어휘력을 늘리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했다. 특히 고차원의 사고와 관련된 추상적인 개념어는 한자를 모르고선 이해할 수 없다. 영어권 국가들이 학생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언어철학자인 이규호 전 연세대 교수는 저서 ‘말의 힘’에서 이성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자라난다고 했다. 단어를 많이 알수록 인식의 지평도 넓어진다는 의미다. 한자를 익히고 어휘를 늘려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