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40대 한국인 남자가 몽블랑 빙하 트레킹을 가게 됐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고기능성 등산복과 등산화,고글 등으로 무장하고 나갔더니 동행할 현지 산악인이 놀라며 “혹시, 암벽 등반 가냐?”고 물었다. 산악인은 허름한 패딩 점퍼 차림이었다, 그걸 본 남자는 “한국인은 뒷산에 갈 때도 히말리야 장비(裝備)를 갖춘다더니 내가 그랬다”고 쑥쓰러워했다.

▶‘크루(crew)’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는 각종 운동 동호회의 ‘장비 욕심’도 등산 애호가 못지않다. 주말 한강 시민공원에 나가보면 사이클 대회가 열리는 벨로드롬 경기장에서나 볼 법한 차림으로 떼 지어 자전거 타는 ‘라이딩 크루’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땀이 차지 않는 상의인 저지, 안장에 오래 앉아도 아프지 않다는 빕숏 하의 차림으로 수백만원짜리 자전거를 탄다.

▶달리기 동호회인 ‘러닝 크루’의 복장도 육상 선수들 뺨친다. 달리기 입문자들이 찾는 인터넷 사이트엔 마라톤 2시간 벽을 깬 킵초게가 신었다는 카본 소재 마라톤화, 심박수 센서와 GPS를 갖춘 스마트 워치, 휴대폰과 신용카드를 넣어서 몸에 묶어주는 러닝 벨트, 기능성 운동복 같은 장비가 나열돼 있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많은 주말 골퍼가 평생 드라이버를 한두 개만 쓴다. 한국인은 3~5년에 한 번씩 바꾼다. 10년간 드라이버와 우드를 15개씩 샀다는 이도 있다. “장비를 바꿀 게 아니라 연습을 많이 하라”는 전문가 조언은 뒷전이다.

▶운동이나 취미보다 장비에만 정성을 쏟는 모습을 풍자하는 소설도 등장했다. 소설가 장류진의 단편 ‘라이딩 크루’에 나오는 두 남자는 여성 회원의 남자 친구가 될 자격을 두고 자전거 대결을 벌인다. 둘은 공정하게 경쟁하자며 쫄쫄이라 부르는 기능성 옷을 모두 벗고 고성능 기어를 갖춘 자전거에서 내려 따릉이를 탄다. 작가는 알몸의 두 남자가 따릉이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는 기괴한 장면을 통해 운동은 뒷전이고 장비에만 몰입하는 일부의 빗나간 세태를 꼬집는다.

▶러닝 크루가 애용하는 카본 소재 운동화는 탄성이 너무 강해 근육이 약한 일반인의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씨는 “초보 운전자한테 배기량 6000㏄ 스포츠카를 몰게 하는 것”이라 했다. ‘인증샷’ 문화도 과도한 장비 욕심을 부추긴다. 많은 러닝 크루가 사진가와 동행하며 자기들이 달리는 모습과 의상 등을 찍게 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취미와 운동의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보여주기만 성행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