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1274년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황제의 명령으로 여몽 연합군이 일본 정벌에 나섰다. 합포(마산)를 출발해 대마도를 거쳐 규슈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이 원정을 망쳤다. 1281년 여몽 연합군이 2차 일본 정벌에 나섰다. 또 태풍이 불었다. 병사 14만명 중 살아서 온 병력은 3만명에 불과했다. 일본인들은 이 태풍에 가미카제(神風)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본인들에게 신풍은 신성한 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대만에는 신풍 대신 신산(神山)이 있다. 고구마 모양의 대만섬 동쪽엔 남북을 종단하는 중앙산맥이 있다. 3000m 이상 고봉을 200개 이상 거느린 험산 준령이다. 대만 섬 동쪽은 지진대 단층이라 매년 크고 작은 지진이 1만5000번 이상 발생한다. 필리핀 해상에서 발생하는 태풍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도 대만섬 동쪽 연안이다. 그런데 거대한 중앙산맥이 태풍을 막고, 지진 충격을 완화하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만인들은 중앙산맥을 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고 부른다.

▶요즘 대만인들이 호국신산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중앙산맥이 아니라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 TSMC다. TSMC가 중국의 대만 침공을 막는 ‘전략 무기’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AI 반도체를 독점 공급하다시피 하는 TSMC가 중국 수중에 들어가는 것은 미국이 막을 것이란 계산이다. 실제로 미국의 군사전략가 중엔 유사시 대만 반도체 생산 시설을 폭파하는 ‘초토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기업의 호국신산 기능은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여실히 보여줬다. 포드, 보잉 등 미국 기업들은 전쟁 기간 군용 트럭 200만대, 항공기 30만대, 탱크 8만6000대, 선박 6만500척, 대포 19만문을 생산했다. 독일 나치즘의 유럽 지배, 일본 제국주의 확산을 막은 일등 공신은 미국 제조 기업의 가공할 생산력이었다.

▶북한 독재자 김정은은 핵폭탄을 호국신산으로 여길 것이다. 한국의 호국신산은 무엇일까. 우리의 진정한 호국신산도 대만처럼 글로벌 첨단 기업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세계 D램 메모리 반도체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은 군함 수리 및 제조를 세계 최고 한국 조선소에 맡기려 한다. 우리는 배터리 산업의 강국이다. 한국 기업이 만든 K-9 자주포, K-2 전차, 천궁 대공미사일, 잠수함, 구축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업의 세금과 생산품으로 나라를 지키니 그야말로 호국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