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K팝, K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한국어 단어 중 하나다. ‘오빠’를 영어로 표기한 ‘Oppa’는 2021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출간하는 영어 사전에 정식 등재됐다. 지난해 2월 미국의 지식 문답 사이트 ‘쿼라(Quora)’에 “한국인들이 남자 친구를 손위 남자 형제란 뜻의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는 질문이 등록됐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에서는 형제 간에 주로 이름을 부른다. 아주 허물없는 관계의 남성 지인을 브러더(형제)의 줄임말인 ‘브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쓰임이 한정돼 있다. 남녀 관계인 상대를 ‘브러더’라고 부르면, 혈육에게 성적인 감정을 품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가족주의가 강한 사회일수록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도 친족 간의 호칭으로 부르는 일이 흔하다. 아시아 국가들이 주로 그렇다. 한국처럼 유교적 가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에서는 형·오빠를 뜻하는 ‘안(Ahn)’, 누나·언니를 뜻하는 ‘치(Chi)’, 동생을 뜻하는 ‘엠(Em)’이란 호칭이 널리 쓰인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는 나이와 무관하게 남자가 ‘안’, 여자가 ‘엠’이 된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여성들도 손위 남자 형제를 뜻하는 ‘아방(Abang)’ ‘방(Bang)’ ‘마스(Mas)’란 말을 남자 친구나 남편을 부를 때 흔히 쓴다.
▶1970년~1990년대 초반 여자 대학생들은 남자 선배를 ‘오빠’가 아니라 ‘형’이라고 불렀다. 학형(學兄)의 줄임말이라고도 하고, 운동권 문화라고도 한다. 1989년 가수 이승미는 ‘사랑도 아닌 우정도 아닌, 그때 그 마음 뭔지 몰랐었지만, 형이 없는 그 찻집이 외로워요’란 가사의 ‘형’이란 노래를 발표했다. 199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의 쇠퇴와 함께 ‘형’은 ‘오빠’로 바뀌었다.
▶북한에서 ‘오빠’를 쓰면 감옥에 간다. 김정은 정권이 한국 문화의 유행을 막는다며 3~4년 전쯤부터 ‘오빠’라는 말을 쓰는 행위를 처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제정된 평양문화어보호법 제19조에 “혈육관계가 아닌 청춘남녀들 사이에 ‘오빠’라고 부르는 행위”는 “괴뢰식”이라고 명시했다. 최근에는 친오빠도 ‘오라버니’로만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아빠’도 금지됐다. 전 세계가 다 아는 단어를 북한에서만 쓰지 못한다.
▶김건희 여사가 명태균씨에게 보낸 카톡 속 ‘우리 오빠’가 친오빠인지 남편 윤석열 대통령인지 논란이다. 혈연 관계의 오라버니부터 남성 지인이나 연인·남편까지 ‘오빠’란 말이 쓰이는 범위가 넓어서 벌어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