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두 자녀와 저녁을 먹다 집 얘기가 나와 농담조로 “아파트는 너희 둘이 사이좋게 나눠가지라”고 해보았다. 그랬더니 반응이 뜻밖이었다. “어느 세월에요?” 할 말을 잃고 가만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우리 세대가 평균수명인 80대까지만 살아도 자녀들도 50대다.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장만하려면 한 푼 안 쓰고 월급 다 모아도 25년 걸린다는 통계도 떠올랐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는 일본의 고민거리 중 하나는 ‘부의 고령화’다. 일본은 금융자산의 60%를 고령층이 갖고 있는데 고령층은 여간해선 투자나 소비를 하지 않는다. 반면 젊은 세대는 재산이 많지 않아 투자나 소비를 할 여력이 없다. 돈이 고령층에 머물며 돌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겪은 장기 불황의 한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속이 이루어져도 문제다. 일본에서 상속하는 사망자 나이가 80세 이상인 비율이 70%가 넘는다. 또 2022년 기준으로 유산을 상속받는 사람 중 60세 이상의 비율이 52%였다. 절반 이상이 60세 넘어 물려받는 것이다. 이른바 ‘노노(老老) 상속’이다. 이 같은 ‘자산 잠김’이 이어지면 국가 경제에는 재앙이다. 일본에선 이에 따른 세대 갈등도 나타났다. 지난해 37세인 나리타 유스케 예일대 조교수는 “고령화 부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결국 고령층이 집단 자살 또는 집단 할복하는 것 아닐까”라고 말한 것이 알려져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나중에 “추상적 은유였다”고 해명했지만 일본 사회의 공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기시다 내각은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2022년 ‘부의 회춘(回春)’ 정책을 실시했다. 막대한 고령층 자산을 젊은 세대로 이전시키기 위해 사전 증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종 세제를 정비한 것이었다. 자녀가 주택을 최초 구입할 때 일정 금액까지 지원해도 비과세하고 손자녀 육아비와 교육비로 각각 1000만엔(약 9140만원), 1500만엔까지 과세하지 않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노노 상속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진행 중이거나 곧 본격적으로 닥칠 문제다. 부작용이 커지기 전에 우리에게도 적절한 수준의 ‘부의 회춘’ 정책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해 자녀 결혼자금 증여 시 공제한도를 1억5000만원으로 늘렸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상속세 공제액을 늘리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상속만 아니라 증여를 통해서도 사회의 부가 젊은 층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