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작년에 조사했더니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결혼을 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8%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친구·지인과 술자리도 못한다’가 33%,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함께 못한다’가 무려 71%였다. 올해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호전되진 않았을 것이다. 사회가 통합도는 하락하고, 갈등은 심화되는 추세인데, 부부도 이 갈등의 골에 휩싸이곤 한다.

▶여성 커뮤니티에는 구구절절 사연이 많다. 남편은 윤 대통령 지지, 아내는 야당 대표 지지, 혹은 반대가 된 사연들이다.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 매번 싸움으로 끝난 뒤 터득했다’는 글이 눈에 띈다. ‘한 이불 덮고 살기 힘들다’ ‘사고 회로가 달라 끔찍하다’는 절실한 의견도 있다. 결국 대화는 단절되고, ‘남편은 거실, 아내는 안방에서 따로 유튜브 본다’고 했다. 어떤 회원은 ‘남편하고 싸울 정도로 정치인이 국민 위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좌든 우든’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미 대선을 앞두고 “남편 몰래 해리스에게 투표하자”는 광고를 내보냈다. 당장 트럼프 쪽 폭스뉴스 진행자가 “사실상 불륜 아니냐”며 발끈했다. 다소 억지스럽긴 했으나 배우자 몰래 무슨 일을 하면 그게 곧 불륜 아니냐는 소리였다. 백인 밀집 지역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로버츠 광고’는 보수층 남성이 집안 목소리가 크다고 본 것 같았다. ‘남편 모르게 트럼프 찍자’는 광고는 못 들어봤다.

▶지인 집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파트 거실 앞쪽에 십자가가 걸려 있고, 뒤에는 부처님이 좌정하고 있었다. 상당한 크기였다. 부부가 종교가 달라서 그렇게 합의했다고 한다. 가족이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이 제각각이란 얘기는 약과다. 중계 TV 앞에서 티격태격하다 금세 돌아설 수 있다. 취미가 달라도 교집합을 찾을 여지는 있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 대선 지지 후보가 갈리면 간단치 않다.

▶인공지능에게 물었더니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 하란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서로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고, 개인도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모범 답안 같기도 하고, 하나 마나 한 소리 같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남편 몰래 할 수 있는 것’으로 비밀 재산 만들기, 사채 쓰기, 친정에 돈 펑펑 주기, 출장 떠나는 남편 미행하기 같은 게 떠 있다. 책임 못 질 소리들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투표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란 로버츠 목소리는 좀 솔깃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