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코로나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5월의 한 주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이 버지니아주(州)의 한 골프장에 나타났다. 대통령의 ‘주말 여가’에 관대한 미국에서도 “미국 내 사망자가 10만명에 가까운데, 대통령은 마스크도 없이 토·일요일 내내 골프를 쳤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가 전임자 오바마도 “항상 골프를 쳤다”고 항변하자, CNN은 “오바마는 재임 중 8.77일에 한 번, 트럼프는 4.92일에 한 번 골프를 쳤다”는 통계를 들이댔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고의 ‘골프광’은 2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 출신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다. 그는 취임 이듬해인 1954년 백악관 잔디밭에 퍼팅그린을 설치했고, 재임 8년간 800라운드를 했다. ‘최고사령관’ 대신 ‘최고위 골퍼(Golfer-in-chief)’란 별명도 얻었다. 그는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계획할 때도 골프를 쳤다. 전쟁 중 일시 폐쇄됐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 공병 출신 독일군 포로 42명을 보내 재건을 돕기도 했다.

▶1995년 11월 10일 뉴트 깅리치 미 하원의장이 골프채를 들고 기자회견에 나왔다. 예산안이 합의되지 않아 연방정부 운영이 중단될 위기인데 빌 클린턴 대통령이 골프를 치러 갔기 때문이었다. 클린턴은 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벌타 없이 다시 치는 멀리건을 애용해 “멀리건의 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아이젠하워의 진정한 후계자로 꼽힌 것은 오바마였다. 그는 재임 8년 동안 333라운드를 쳤는데, 멀리건 없이 80타 중반~90타 초반을 쳤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오바마를 비판하며 “나는 일하느라 골프 칠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첫 임기 4년간 261라운드를 돌았고, 2019년 사비 5만달러를 들여 백악관에 ‘골프 시뮬레이터’를 설치했다. 올 초부터 트럼프 지지율이 꾸준히 높게 나오자, 외교관들은 “만약을 대비해 윤석열 대통령도 골프를 연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이든 행정부를 의식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이 여러 차례 토요일에 골프를 쳤다고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이 9월 초부터 “8월에 골프를 치지 않았나”라며 공세 중이었는데, 대통령실이 설명을 않다가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와의 외교를 위해 8년 만에 골프 연습을 재개했다”고 해서 긁어 부스럼이 됐다. 대통령의 주말 골프를 문제 삼을 시대도 아닌데 처음부터 솔직히 “골프를 쳤다”고 하지 못해 거짓 해명처럼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