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가로수는 단순히 거리에 심은 나무가 아니다. 많은 도시가 가로수를 써서 저마다의 이미지를 만든다.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이들은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개선문까지 죽 늘어선 마로니에를 보며 비로소 파리에 왔다고 실감한다. 이탈리아 로마를 대표하는 가로수는 우산소나무다. 나무 꼭대기에서 가지가 우산 모양으로 펼쳐져 자태가 아름답고 지중해 여름 땡볕도 가려줘 관광지 가로수로 제격이다. 남아공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의 가로수는 자카란다이다. 봄에 보랏빛 꽃을 피우며 계절이 우리와 반대인 남반구 도시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도드라지게 한다.

▶서울에 본격적으로 가로수가 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다. 나무가 부족한 서울을 빠르게 녹화할 목적으로 잘 자라는 미루나무와 수양버들을 심었다. 해방 후엔 넓은 잎으로 먼지를 흡착해 매연과 분진을 줄여주는 플라타너스가 각광받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도시 미관에 관심이 높아지며 은행나무가 서울의 대표 가로수가 됐다. 서울 가로수 약 30만 그루 중 은행나무가 10만 그루로 가장 많다.

▶가로수로 쓰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나무가 아름다우면서도 사람에게 해롭지 않아야 하고, 매연과 병충해도 잘 견뎌야 한다. 시민의 기호 변화도 반영된다. 냄새에 민감하지 않던 때엔 사랑받던 은행나무가 지난 10년 사이 서울에서만 1만 그루 넘게 사라졌다. 대신 꽃이 예쁘고 악취는 없는 이팝나무가 뜨고 있다. 회화나무도 증가 추세다.

▶제주를 상징하는 야자나무 가로수도 변화를 겪고 있다. 해외 여행이 드물던 시절, 국내에서도 이국적 정취를 느껴보자며 1980년대 워싱턴야자수를 들여와 심은 것이 오늘날 제주를 대표하는 가로수가 됐다. 제주공항 입구의 야자수를 보며 “제주에 왔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심은 지 30년이 지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크게 자란 야자수 가지가 태풍 때 부러져 사람과 차량을 덮치고 전깃줄을 끊는 사고가 반복되자 야자수를 다른 가로수로 교체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2021년 교체가 시작돼 지금까지 약 40%를 베어냈다고 한다.

▶야자수가 사라진 자리엔 후박나무, 먼나무, 담팔수 등 상록수가 들어서고 있다. 야자수만큼 색다르지는 않지만 온화한 제주 날씨의 이미지를 살리자는 취지라고 한다. 제주시에 전화해 “야자수를 모두 없애느냐?”고 물었더니 “아쉬워할 방문객을 위해 공항 주변과 용두암 등 주요 관광지의 야자수는 그대로 둔다”고 한다. 제주의 새 가로수도 야자수처럼 방문객의 사랑을 받기 바란다.